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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설명
  • [조홍식 교수] 유럽 재정위기 묘약

    • 등록일
      2012-05-01
    • 조회수
      1297

 

[국제칼럼] 유럽 재정위기 묘약

 

경향신문 2012-04-23

  

  유럽의 재정위기 극복을 위한 대처방안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극약 처방이라는 분석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소로스는 독일이 유로권에 긴축 일변도 정책을 강요한 탓에 유로가 죽어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 역시 돈줄을 죄는 것만으로는 유럽경제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와 성장을 가져올 수 없다고 경고했다.

 

2010년 그리스에서 시작한 유럽 위기 이후 유럽연합과 국제통화기금, 그리고 프랑스와 독일의 ‘메르코지’ 체제가 그리스 등을 재정 지원하는 대가로 강요했던 처방은 강화된 긴축예산이었다. 지난 3월2일 유럽정상회의에서 결정된 재정안정을 위한 예산조약은 회원국들이 긴축을 통해 재정균형에 도달한 뒤, 더 이상 무책임한 적자정책을 펼 수 없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다.

 

하지만 호황기에도 달성하기 쉽지 않은 긴축재정은 요즈음 같은 글로벌 불황기에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까지 위협할 수도 있는 위험한 처방이다. 실제 유로권의 경제성장률은 올해는 마이너스 0.3%, 내년 역시 0.9%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비교적 사정이 낫다는 독일과 프랑스의 금년도 성장률도 각각 0.6%와 0.5%이며, 에스파냐와 이탈리아는 각각 마이너스 1.8%와 1.9%로 예상된다. 경제가 퇴보하는 상황에서 재정의 허리띠를 더욱 당겨매라는 주문이다. 이처럼 과도한 재정 긴축은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사회적인 위험과 재정적 비효율성을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전 유럽 차원에서 병도 치료하고 환자도 살릴 수 있는 묘약의 실체는 명확해 보인다. 우선 유로권이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하려면 누군가가 국채에 대해 확실한 책임을 진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이에 대한 방법으로 유럽중앙은행이 최종적 대부자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지금까지 유럽중앙은행은 제도적으로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원국의 국채를 일시적으로 매입했고, 은행권에 1조 유로의 자금을 싼 이자에 빌려줘 국채시장의 안정을 꾀한 바 있다. 만일 공식적이고 제도적으로 중앙은행이 개입하고 책임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면 유로는 시장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 유로본드라 불리는 유로권 회원국의 공통 채권을 만들 수도 있다. 미국에서 연방차원의 국채시장이 존재하듯, 유로권에서도 회원국 사이의 연대에 기초한 채권시장을 형성하는 방식이다. 현재 이 두 제도적 개혁안은 독일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유럽이 성장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긴축 기조를 완화해 일단 한숨을 돌린 뒤, 미래를 준비할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지나치게 강력한 재정 긴축 목표를 설정하기보다는 다년간의 장기적이고 점진적인 재정 긴축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대두된다. 이미 유럽연합 집행위에서는 유럽투자은행(EIB)을 통해 인프라 투자를 촉진하고, 환경·IT·건강 등의 새로운 분야에서 성장 동력을 마련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2000년대 국제 경쟁력 확보로 ‘독일의 기적’을 만들어 낸 슈뢰더 전 총리도 유럽차원의 공동농업정책 재원을 공동산업정책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독일의 이기적 입장을 극복하고 유럽 차원의 신뢰와 성장 회복을 위한 연대를 추진할 수 있는 정치력이 필요하다.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 사르코지가 재선에 실패하고 올랑드가 당선된다면 메르코지 체제가 붕괴되면서 프랑스의 올랑드, 이탈리아의 몬티, 에스파냐의 라호이를 연결하는 성장연합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독일에서 유럽연대를 중시하는 사민당 세력이 2013년 집권한다면 유럽의 성장을 위한 변화의 정치 지도가 완성될 수 있다. 하지만 당분간은 유로 붕괴의 위협이 제한된 개혁을 강제하는 위험한 줄타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홍식 ․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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