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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합의 없는 맨손 결투

 

  경향신문 2011-11-29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계기로 정국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한편에선 자유무역협정이 선진화와 성장의 보증수표라고 하고, 다른 편에선 미국 식민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니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현재와 같은 정치적 혼돈 상황에서 이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자유무역협정 문제는 국가의 장기적 전략과 포석이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논의를 통해 풀어야 한다.

 

첫째, 자유무역협정은 국가의 미래 경제가 걸린 역사적 선택이다. 따라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적 합의를 반드시 도출해야 한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한·미 FTA가 대한민국의 선진화에 필수적이라고 진심으로 믿는다면, 야당을 설득하고 여론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아동 무상급식에 대해선 단계론을 주장하며 주민투표에까지 부치는 정당이, 무슨 명분으로 국가의 미래 경제를 좌우할 결정에 대해선 날치기 작전이란 오명을 감수하면서까지 속전속결로 처리하는지 납득하기가 어렵다.

 

민주당과 언론도 국민적 비판 대상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비록 여권의 날치기 꼼수가 야권과 언론의 공세에 빌미를 제공하기는 했지만, 한국의 무모한 ‘동시다발 전방위 FTA 전략’은 13년 전 집권한 김대중 정부가 세웠으며 한·미 FTA 체결 역시 4년 전 노무현 정부가 성사시켰기 때문이다.

 

한국의 헌정질서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21세기형 자유무역협정을 비준하기 위해선 여야의 합의 또는 국민투표를 통한 민주적 정당성의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 선진화의 모델인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나 유럽통합의 조약 등, 주요 국가 사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날치기 비준이란 후진적 행태가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자유무역협정의 결과는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다. 여권의 선진화 담론이나 야권의 식민지 논리는 모두 조금씩 일리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과장되고 편향된 시각이다. 경제적 손익계산조차도 불확실한 추측일 뿐이다. 이익의 균형이나 불균형은 경제의 역동성을 감안하지 않은 정치적 해석에 불과하다.

 

자유무역협정의 진정한 의미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시장을 형성함으로써 경쟁을 강화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글러브를 끼고 하던 권투가 맨손 대결의 시대로 전환되는 것이다. 즉 승자와 패자를 명확히 구분하고 KO패 당하면 죽을 수도 있는 치명적 게임을 벌이자는 뜻이다. 이런 까닭에 세계경제 세력의 커다란 두 축인 미국과 유럽연합은 서로 자유무역협정을 맺지 않는다. 그런데 2011년 한국은 이들과 ‘동시에’ 맞대결을 벌이겠다고 나선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담대함이다.

 

이는 자유무역에 대한 실용적 접근이라기보다는 종교적 추종의 결과로 보인다. 말하자면 자신감의 표출이 아닌 객기에 가까운 정치적 결정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이런 전략을 택한 국가는 19세기의 대영제국, 20세기의 미국 등 지구촌의 헤게모니를 쥔 제국뿐이다.

 

셋째, 치명적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기어코 한국이 세계 자본주의의 가장 치열한 싸움판으로 진입하겠다면 충격을 완화할 강력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맨손으로 싸우다가 갈비뼈가 부러지고 뇌손상을 입었을 때 곧바로 치료받을 수 있는 안전시설, 이게 바로 ‘보편적 복지’다. 한나라당은 왜 독일 통일의 아버지인 비스마르크가 경제통합정책과 동시에 복지정책을 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야권 역시 소모적 정치공세에서 벗어나 자유무역과 보편적 복지를 패키지로 묶는 건설적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물론 보편적 복지를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고, 그것도 부자만의 증세가 아닌 ‘보편적 증세’를 도입해야 한다. 정부와 여권의 말대로 자유무역 덕분에 한국 경제가 고속성장을 한다면 보편 복지의 시행쯤이야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미국과 유럽연합이라는 두 골리앗과의 대결에 나서는 것이 돌이킬 수 없다면 경제적 개방과 사회적 보호를 균형적으로 추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조홍식 ․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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