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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유로의 성장통

경향신문 2011-09-25

 

1999년 탄생한 유로가 12년이 지난 지금,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일부에선 유로권 국가인 그리스의 국가부도 가능성을 제기하고, 심지어 독일이 유로권에서 탈퇴함으로써 유로가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전 세계가 유럽의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주목하는 이유다.

 

유로권 위기의 발생과 심화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유럽 국가들은 같은 화폐를 사용하지만 서로 다른 재정 정책을 펴왔다. 경제학자들은 유럽이 하나의 화폐를 사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오래 전부터 지적해 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이후 불안해진 시장 세력은 그리스를 비롯한 지중해 국가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둘째, 유로에 대한 미국 및 영국의 견제다. 경제 현상에서 쉽게 나타나는 자기실현적 예언의 법칙에 따라 영·미계 언론 및 신용평가사의 유로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위기를 심화시켰다. 2008년 경제 위기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신용평가사들은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를 만회하려는 듯, 연일 유로권에 대한 혹독한 평가를 쏟아내고 있다.

 

셋째, 유럽의 정치적 분열은 위기에 대한 일치된 대응을 어렵게 했다. 2010년 5월에 결정됐던 제1차 그리스 지원책이나 그 후 나왔던 대책들은 모두 미봉책에 불과했다. 특히 범유럽 차원의 경제 정부를 주장하는 프랑스와 재정 긴축을 강조하는 독일 간의 불협화음은 위기악화의 주범이다. 특히 그리스·포르투갈·이태리·스페인 등 지중해 국가의 지원에 대한 독일 국내 여론의 비판적 입장은 메르켈 정부의 운신의 폭을 좁혔다.

 

하지만 이상과 같은 다양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유로를 지탱하는 힘 또한 만만치 않다. 역사적으로 1992년과 1993년에 있었던 유럽의 금융 위기로 당시까지 성공적이라 평가받았던 유럽통화제도(EMS)는 붕괴되었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은 그 후 허리띠를 매는 노력을 통해 1999년 이전보다 진일보한 유로라는 단일 화폐를 출범시켰던 것이다.

 

통화 분야의 이 사례는 사실 유럽 통합의 역사에서 반복되는 위기 극복 과정의 상징적 사례다. 1950년대 유럽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역사를 종결하고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의 시대를 열 수 있었던 것은 단기적인 경제적 이익을 넘어 전 유럽의 평화 정착이라는 장기적인 목표를 향해 협상하고 노력한 덕분이다. 따라서 당분간은 우유부단함이나 지루한 협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유럽인들이 유로화를 포기하는 상황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사실 이번 위기 대응 과정만 세밀히 보더라도 유럽인들이 기존의 제도와 규칙을 뛰어넘어 새로운 거버넌스의 확립으로 나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유럽중앙은행의 시장개입이나 국가 부도를 막기 위한 금융안정기금 및 제도의 도입은 기존의 합의를 초월하는 새로운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1.3을 넘는 달러 대비 유로의 환율은 호들갑을 떠는 언론 보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장 세력이 유로를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변한다.

 

현재의 기로에서 미래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고리는 독일의 태도이다. 독일은 도이치 마르크를 포기하고 유로화를 만들 때부터 통화정책의 절대 목표를 물가안정으로 잡고 이를 관철시켰다. 유럽중앙은행이 독일 연방은행 모델에 따라 설계되고 프랑크푸르트에 자리 잡은 것은 유로가 유럽차원의 마르크를 지향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제 독일은 단기적 희생을 치르더라도 장기적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유로권이 붕괴되면 독일도 첫해에만 국내총생산의 20~25%의 손실을 입을 것이라는 UBS은행의 조사는 유럽이 운명 공동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위기 상황에서 미래 예측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유로의 운명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달러에 대한 유일한 경쟁 및 대안 화폐이자 인류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국가 간 협력과 통합의 상징인 유로가 호된 성장통을 겪으면서 더욱 공고한 제도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는 세계 경제가 다시 안정과 성장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조홍식 ·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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