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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영국 폭동, ‘강 건너 불’ 아니다

 

중앙일보 2011.08.15

  

지난주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 발생한 대도시 폭동은 세계화의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내 준 상징적 사건이다. ‘세계화’란 19세기부터 제국주의 확산을 통해 근대국가와 자본주의가 보편화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선도한 최첨단 선진 국가다. 따라서 이번에 발생한 소요는 전 세계에 위기감을 동반한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번 폭동의 첫째 요인은 다문화 이민자의 사회통합 실패다. 이는 프랑스의 2005년 경험과 비교되는 이유다. 현재 영국과 프랑스의 종족 및 문화적 구성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식민지 시대 폭력으로 다져진 지배·피지배의 관계는 쉽게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유럽 전역에서 이민자를 혐오하는 극우세력은 점차 확산되고 구(舊)식민지 국가에서 온 이민자는 과거 종주국이 초래한 피해에 대한 강한 보상심리적 권리의식을 갖는다. 1992년 미국의 LA 폭동 역시 제국주의 대신 노예제도라는 불행한 역사적 배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

 

 둘째 요인은 양극화로 요약되는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이다.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표현되는 복지국가의 상징이었다가 79년 대처 총리가 집권한 이후론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첨병 국가로 돌변했다. 이 시기 영국은 제조업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금융 중심의 서비스산업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제구조로 바뀌었다. 사회의 한쪽에서는 도박판처럼 변한 자본주의로 상상조차 힘든 천문학적 부의 축적이 이뤄지는 반면 국민의 약 20%는 청년실업과 워킹푸어(working poor)란 루저(loser)로 존재한다. 2008년 경제위기는 금융의 커다란 중심축인 영국에서 특히 기승을 부렸고, 현재의 캐머런 정부는 선진국 중에서도 가장 긴축적인 재정정책을 펼치고 있다.

 

 셋째는 사회 갈등을 조정하는 자유민주주의 정치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국의 정당 역시 사회세력을 대표하는 본연의 역할을 포기한 채 권력 쟁탈에만 전념하는 직업 정치인들의 클럽으로 변한 것이다. 2009년 드러난 영국 의회 스캔들로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돈을 얼마나 개인 용도로 낭비하는지가 만천하에 공개돼 정치에 대한 실망과 혐오감을 증폭시켰다. 무책임한 금융가 집단이 회사와 나라를 망쳐도 자신의 보너스로 평생을 호강하고, 의원들은 국민을 위한답시고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 상황을 지켜보던 도시 빈민들이 집단적 노략질에 나서는 도덕적 붕괴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번 사태는 비단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 혜택에서 소외되고 사회적으로 탄압받는 계층이 집단적 불만을 표출하면서 정치·도덕적 질서가 붕괴되는 현상은 21세기 세계 각국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세계화 현상으로 어느 대륙에서나 다양한 종족 및 문화집단 간의 충돌이 빈번해졌다. 경제적인 세계화는 각 사회 내에서 불평등 문제를 폭발 직전으로 심화시켜 왔다. 게다가 엘리트층의 부패는 정치 권력과 국가 권위에 대한 신뢰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렸다.

 

 우리도 ‘강 건너 불구경’할 입장은 아니다. 세계화는 증시로 대변되는 금융권만 서로 연결돼 춤추는 시스템이 아니다. 세계화는 분노하는 소수집단이 테러를 서로서로 학습하고, 분노하는 계층끼리 모여 사회 파괴적 행동에 함께 나서기도 한다. 한국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의 자살률을 감안하면 잠재적인 폭력 수준이 높은 사회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폭력적 성향이 방향을 바꿀 경우 우리 사회 역시 도시 폭동의 안전지대라고 안심할 수도 없다. 도시 폭동이 아직 이웃 이야기로 들릴 때 신중하게 성찰하고 예방해야 한다.

 

조홍식 ․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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