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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복지 확대 없이 출산율 높인다고?



경향신문 2011-01-16


건강한 사회를 측정하는 잣대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출산율은 대단히 핵심적인 기준이 될 것이다. 다산을 통한 후대의 번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으로 통했다. 의료 발달로 출산을 조절할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도 출산율은 미래에 대한 예측과 희망을 반영하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다.



서유럽 국가의 고출산율 행진


새해 들어 유럽연합 27개국의 2009년 인구 통계가 발표되면서 매우 흥미로운 결과가 드러났다. 각국 여성의 평균 출산율을 비교했을 때 유럽은 2명에 가까운 상대적 고출산 국가군과 1.5명 전후의 저출산 국가군으로 나뉜다. 출산의 챔피언은 1.99명의 프랑스가 차지하였고, 북구의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등이 1.8명 이상의 높은 출산율을 보여주었다. 과거 공산권에 속했던 중·동유럽의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과 남유럽의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가 모두 1.5명 이하의 심각한 상황이다.


비슷한 사회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유럽에서 복지 수준이 높은 국가일수록 출산율은 높다. 미국이나 한국의 보수 세력이 사회주의 국가라고 부르는 스칸디나비아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를 자랑한다. 국내총생산의 절반에 가까운 세금을 거두어 무상 의료, 무상 교육을 위해 투자하는 나라들이다. 유럽에서 인구정책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프랑스 역시 아주 오랜, 그리고 다양한 가족 지원정책의 역사를 자랑한다. 국가에서 자녀 수에 따라 생활비를 현금으로 지원하는 것은 물론, 주택·교통·복지에서 특혜를 제공한다. 쌍둥이를 낳으면 국가에서 보모를 파견하는 배려를 해준다. 교육과 의료는 국가에서 책임지기에 경제적인 계산이 출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은 기본이다.


물론 복지만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독일은 복지가 발달한 국가지만 출산율이 1980년의 1.56명에서 1990년의 1.45명, 그리고 2009년에는 1.35명까지 줄어들어 심각한 상태다. 저출산의 동독과 통일한 것이 한 요인이지만 보다 전반적으로 독일의 문화적 인식이 프랑스와는 다르다. 적어도 학령기가 될 때까지는 엄마가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관념이 강해서 여성이 직업과 가정 사이에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황이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아주 어릴 적부터 보육원이나 유치원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여성이 직장과 가족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문화적 배경이다.


반면 문화적으로 남성 우월주의가 북유럽보다 상대적으로 강하고 여성에게 경제사회적 부담과 전통적인 가사 부담이 가중되는 남유럽에서 출산율이 낮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는 모두 1980년 2명 이상의 높은 출산율에서 2009년 1.5명 이하로 급격하게 감소하였고, 이탈리아도 1.64명에서 1.41명으로 꾸준히 줄었다. 가톨릭 문화 전통을 가지면서도 전통적인 가족 개념을 현대 사회에 맞도록 변화시키는데 성공한 프랑스와는 대조를 이룬다. 실제 프랑스는 결혼이라는 전통적 가족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1999년 ‘민간연대결약(PACS)’이라는 보다 느슨한 형태의 제도를 도입하였다. 동성애 커플을 제도화하는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었는데, 결혼이라는 강력한 전통적 제도를 거부하는 이성애 커플도 적극적으로 이를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2009년 통계를 보면 프랑스에서는 25만쌍의 결혼과 17만쌍의 PACS 커플이 탄생하였다.



공동체 생존 문제로 시각 바꿔야


무상(無償)이라는 글자만 보이면 경련을 일으키는 한국의 보수 정치인들, 복지에 대해서는 건전 재정을 외치면서 반대하고 경제적 인센티브라는 이름의 돈 몇 푼으로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들을 믿다간 한국 사회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쇠락하고 말 것이다. 1.19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 출산율의 나라에서 획기적인 복지 확대와 사회에서 성평등의 일상화는 이제 사치스러운 논의가 아니라 공동체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조홍식 ․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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