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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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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설명

 

1차원적 인간

 

Herbert Marcuse

  

주인을 자유로이 선출한다는 것은 주인이나 노예를 폐지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 속에서 자유 선택은 이들 상품과 서비스가 고통과 공포의 생활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지속시키는 한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과 자유가 진정한 행복과 자유인 것인가? 비판이론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 프랑크푸르트학파 일원인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의 생각을 집약적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 일차원적 인간이다. 그는 이러한 물음에서부터 출발한다.

  

우리의 일상은 선택의 일상이다. 아침에 일어나 무엇을 먹을까 부터 시작해 어느 대학에 진학할 것인지, 어느 회사의 핸드폰을 구매할 것인지, 어떤 사람과 결혼할 것인지 등 작은 일상에서부터 인간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것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물론 우리는 우리가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선택지를 고른다. 즉 자유롭고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나의 선택에 대한 독립성을 보장받고, 그러한 자유로운 선택 자체가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마르쿠제는 이러한 우리의 선택이 진정 자유로운 선택이었는가, 진정 주체적인 선택이었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 이를테면 관리가격에 의한 자유경쟁, 자율로 검열하는 자유 언론, 상표와 상업광고 사이의 자유로운 선택에서 보여지는 기만적인 자유를 유지하고 싶다는 욕구 등이 사회 통제에 의해 강요되고 있다."

  

마르쿠제는 산업화된 사회의 허점을 이데올로기의 시각에서 파헤친다.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의 본질은 전체주의적 억압이라고 폭로하고 있다. 그는 산업화된 사회를 한마디로 일차원적 사회라고 규정짓는다. 그에 따르면 진보된 사회는 그 이전의 어떤 사회보다도 더 이데올로기적 사회라고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이데올로기는 선전이나 학습에 의해서가 아니라 산업의 생산과정 그 자체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 말 뜻은 과연 무엇일까? 현대산업사회의 생산기구와 그 산물인 상품과 서비스는 사회전체의 거대한 시스템으로 만들어진다. 즉 대량생산, 대량수송, 의식주의의 상품화, 오락산업과 정보산업의 발달은 우리로 하여금 획일적인 태도와 습관을 갖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는 부작용이나 도덕적 해이에 대해서는 점점 무감각해지고 비판적인 사고를 막는다. 산업화는 급속한 기술발전과 빠른 전파속도를 가지는데, 이것은 깊이 있는 사고와 면밀한 관찰에 앞서서 유행처럼 번지는 양적확대이다. 그는 이러한 양적 확장의 추구욕구를 생산물의 교화와 조작에 의한 허위의식이라 지적한다. 이렇게 소위 일차원적인 사고와 행동의 패턴이 나타난다.

  

직업을 선택할 때 우리는 나의 행복을 위해, 자아실현을 위해 직업을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업 안에서, 직장인으로서의 나의 삶은 열심히 일하거나 회사를 그만 두고 굶어 죽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된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라는 것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없는 강제적인 선택에 불과하다. 그러한 현상이 구조화되면서 우리는 회사의 발전을 위해 나의 전부를 바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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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인터넷이 일반화되면서 누리꾼의 집단적인 의사 표현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인터넷의 활성화가 대중의 의사 표현에 대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으나 마르쿠제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거짓된 욕구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 상에서 악성 댓글이 끊이지 않고 마녀사냥과 같은 폭력적이고 유행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하는 일에 대해 개인은 자신도 그에 동의한다는 자기 확인적 가설속에서 무비판적으로 행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현대인들은 언어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도 자율적이지 못하다. TV화면 속 광고주가 전달하는 언어를 통해 이야기하고, 그저 복제화된 이데올로기를 자신의 주체적인 판단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대중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삶의 양식을 따라가기 위해 자신의 삶의 양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거짓된 욕구란 개인을 억압하는 것이 이익이 되는 특정의 사회적 세력이 개인에 대하여 부과하는 욕구. 마르쿠제는 이러한 거짓된 욕구로부터 벗어나 진실한 욕구를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회의 억압적 관리가 합리적·생산적·기술적 및 전체적으로 되면 그럴수록 관리되고 있는 개인들이 그 노예상태를 타파하고 자기 해방을 달성하는 수단과 방법은 갈수록 상상하기 곤란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어떤 태도가 필요한 것일까?

  

"모든 해방은 노예상태를 자각하는 데 기초하고 있고혁명은 기존의 억압적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욕망의 표출이 있을 때 혁명의 축제는 시작되는 것이다. 마르쿠제 역시 일차원적인 사유 체계에서 벗어나 인간의 주체적인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기존 체제의 욕망을 거부할 수 있는 새로운 인간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마르쿠제가 학생 지식인 여성 등과 같은 소수집단에게서 희망을 보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의미가 있다. 무한한 미래가 얼마든지 열려있을 때, 현재는 우리 삶의 터전이 된다. 기존의 진정 자신이 원하는 욕망이라 착각하며 아무 비판과 거부 없이 체제라는 안정적인 영토에서 벗어나 자신이 속한 사회와 개인이 가진 모순을 파헤치며, 자유로운 나의 욕망을 찾아갈 때 우리에게 미래는 희망적일 수 있을 것이다. 의식적으로 어느 환경에 있던지 오로지 상대방과 나를 둘러싼 사회에 대하여 허점만을 찾으려 하는 의식적인 비판은 또 다른 제2의 무비판적인 1차원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드러날 때 실상 그 비판의 내용이 결과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전주곡이 되었을지라도, 비판하는 첫 시발점과 그 과정 자체에 있어서 남들에게 가르치려 든다.’는 거부의식이 들게 하면 곤란하다. 그러지 않으려면 진정으로 개인과 사회의 부조리함 없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지는 못하지만, 눈에 보이는 허점들과 그 모순을 보고도 안일한 태도를 가장한 무비판과 진정한 비판의식의 경계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THE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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