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 영국 보수당의 역사
5년 주기로 치러지는 대선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정당의 이름을 맞이한다.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혹은 새천년민주당, 대통합민주신당, 민주통합당, 새정치민주연합 등 선거마다 당명을 바꾸는 모습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이러한 현실에서 저자는 영국 보수당의 긴 역사 속에서 우리의 불안정한 정당정치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보수’ 라는 반동적인 이름으로 산업혁명, 제국주의 시대 등 역동적인 영국 역사 속에서 꿋꿋이 살아남은 그들의 저력을 통해서 말이다.
19세기 영국은 산업화에 따른 사회변화에 정치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였다. 중산층으로 선거인을 확대하고, 선거구를 조정하는 개혁법과 외국에서 들여오는 곡물에 관세를 부과하는 곡물법의 폐지 여부가 중요한 현안이었다. 당시 보수당의 리더였던 로버트 필은 개혁법을 받아들이고 곡물법을 폐지하였다. 그가 수용했던 1832년의 개혁법이 정치적 승리였다면, 1864년의 곡물법 폐지는 그들을 위한 경제적 승리였다. 이러한 조치는 향후 보수당의 지지기반을 확대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였다. 필의 선택은 보수당이 언제나 기득권을 지키려고만 하는 반동적인 집단이 아니라, 내부적인 반발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요구와 변화에 대응할 역량을 갖는 정치조직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 후 시련에 빠진 보수당의 운명을 회복시킨 것은 오늘날 보수당의 아버지(founder of the Party)로 불리는 디즈레일리의 공이었다. 0%; mso-text-raise: 0pt”>, 주요 이슈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으로 전환하면서 수권정당으로서의 신뢰감을 높였다. 공장과 공공위생 관련 법안, 노조의 권리에 대한 제한적인 인정, 주택과 지방정부 개편 등 사회개혁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디즈레일리의 이러한 사회개혁에 대한 주장은 보수당이 더 이상 변화와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이 아니며, 개혁법 도입으로 변화된 유권자 층에 대해 적극적으로 다가서려는 노력을 하는 정당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그는 오늘날까지 인용되는 명연설을 통해 보수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제시했다. 그는 ‘보수당만이 현재 영국의 제도를 보존할 할 수 있고, 대영제국을 수호할 수 있으며, 일반 국민의 생활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디즈레일리가 제시한 위의 연설은 이후에도 보수당의 중요한 정치적 사상으로 남게 되었다. 디즈레일리는 보수당을 사회개혁의 선구자로 만들 뿐만 아니라 국가통합과 대영 제국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디즈레일리의 뛰어난 점은 자신이 처해 있는 시대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사항을 찾아내고 그 이슈를 선점하는 안목과 능력에 있었다. 1874년 총선을 통해 디즈레일리의 보수당은 이제 잉글랜드 지역과 소수의 특권계급에 의존하는 정당이 아니라, 모든 지역과 모든 계층에게 호소력을 갖는 실질적인 ‘전국정당’이 될 수 있었다. 디즈레일리가 보수당에 남긴 가장 큰 족적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당 조직의 측면에서나, 그리고 선거 지지라는 측면에서 보수당이 전국적인 정당이 될 수 있게 한 것이다.
저자는 보수당의 생존과 나아가 오랜 번영의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했다. 보수당은 대단히 권력을 열망하는 정당이고, 유연한 정당이고, 때로는 사회개혁도 적극 추진하는 모습을 통해 당의 외연을 넓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보수당은 집권하기 위해서 최대한 현실과 타협했다. 디즈레일리 수상은 “빌어 먹을 너의 원칙을 버려라. 그저 당에 충실해라‘실용적 기회주의(pragmatic opportunism)’이라고도 표현되는 이러한 유연한 정치적 특성이야말로 보수당의 질긴 생명력의 원천이라고 이 책의 저자는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선거에 승리하여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라면 특정의 원칙이나 이념에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대적 흐름에 스스로를 적응시킬 있었고, 그것이 바로 보수당을 단순히 살아남은 것만이 아니라 성공적으로 생존할 수 있게 만든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생활개선과 복지증진 같은 사회개혁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그것이 당대의 시대적 요구였고 특히 선거 승리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정당은 어떠한가. 상대 당의 정책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행사하고, 구시대적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 있어 현실 정치로 녹아들지 못한다. 또한 유권자들의 사회개혁에 대한 욕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지 못하며, 포퓰리즘적인 접근만을 지속한다. 선거에서 대통령을 살려달라는 선거구호를 외치고 절을 하는 감성적인 여당의 선거 전략이나 선거 때마다 정권 심판론만을 외치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야당의 선거 전략과는 대비되는 영국 보수당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정당 정치가 가야할 길을 찾을 수 있겠다.
미국의 저명한 학자 샤츠 슈나이더는 ‘민주주의를 만든 것은 정당이며, 정당 없는 민주주의는 생각할 수도 없다’ 고 했다. 학자마다 이견이 있지만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사회에서는 정당, 특히 국민의 의사를 효율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정당의 모습이 매우 중요해졌다. 영국 보수당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감성적이고 무능하며, 패권주의에 빠진 구시대적인 정당의 모습이 아닌 능동적인 백년정당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아야 할 것이다.
THE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