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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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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설명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들어가며

과거 춘추 전국시대의 공자는 사회혼란의 원인이 개인들의 타락에 있다고 생각하고 개인의 도덕성 회복인 인(仁)을 통하여 개인들의 타락을 해결한다면 사회의 혼란 또한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렇듯 과거에는 개인이 선해지면 사회 또한 선해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개인들은 자신의 도덕적 타락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런 과거의 시각들은 개인들에게 자숙과 죄의식을 갖고 있게 만들었고 당시 사람들에게 마음속에 짐으로 존재했다.

 

니버의 색다른 문제제기

그러나 니버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모두들 개인은 비도덕적이고 이런 개인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던 게 아닌 오히려 개인들은 도덕적이고 이런 개인들의 집단인 사회가 비도덕적이라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는 이런 주장을 통하여 그동안 사람들이 내면에 갖고 있던 짐을 덜어주었다. 니버는 “개인들은 결정적인 행위의 문제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이익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익을 고려할 수 있고,또 때로는 자기의 이익보다 타인의 이익을 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도덕적일 수 있고, 때로는 그들 나름대로의 헤아리는 마음을 가졌다.” 이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동안 개인을 비도덕적인 존재로 가정해오던 것과는 달리 개인의 도덕적인 부분에 중심을 맞추고 오히려 도덕적인 개인이 집단화 되었을 때 비도덕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제시했다.

 

왜 도덕적인 인간이 사회집단으로 뭉쳐질 때 비도덕적으로 변하게 되는가?

개인이 자신이 갖고 있는 이기심과 욕심을 오히려 개인으로 있을 때 이를 자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개인으로 있을 때 억압되던 부분이 오히려 집단화 되면서 표출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개인이 개인으로 존재할 때 금욕적이며 도덕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개인들이 집단화로 통하여 표출되는 이기심은 집단이기주의로 인한 것으로 보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도덕적인 개인을 비도덕적으로 만들게 되는 원인에 대한 접근.

니버는 크게 국가 간의 관계, 특권계급의 윤리적 태도,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윤리적 태도에서 드러나는 집단의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우선 국가관계에 있어서 전혀 윤리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현실주의적 접근을 통하여 도덕적인 가면을 쓰고 이기적인 행동을 취하는 국가의 태도를 비판하고 이기적인 국가들 간의 관계에서의 나타나는 비도덕적인 의사결정을 비도덕적 사회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속의 계급을 크게 특권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분류하여 접근하고 있는데, 특권계급들은 자신들의 특권이 계속 유지되기를 바라고, 그러면서도 사회적인 명성과 부를 위하여 위선적이고 감상주의 적인 태도를 비판한다. 또한 프롤레타리아 계급 또한 그들을 긍정적으로 보는 마르크스의 시각을 비판하고 그런 프롤레타리아 계급 내에도 계급이 존재하고 이런 계급 간에 수탈과 냉소적인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종교적인 방법의 해결조차 부정한 종교학자

그는 종교학자이지만 종교적인 방식으로의 문제접근은 경계하고 있다. 개인들에게 종교적인 윤리를 일괄적으로 적용한다는 것은 개인들 모두가 높은 수준의 금욕주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기에 현실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마르크스주의를 유토피아적이고 현실성이 없다 비판하며, 자본주의의 탐욕성을 경계하고 공산주의가 야기할 수 있는 나태한 문제점을 모두 비판한다. 오히려 간디의 비폭력 저항적 운동의 접근을 통한 문제해결을 모색하기도 한다. 그리고 문제 해결에 있어서 혁명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 또한 하나의 방안으로서 혁명의 의미를 존중한다. 이런 그의 시각은 지극히 현실적이며 현실의 정치를 반영하고자 노력했다. 종교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철저한 정치학적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한 점이 돋보인다.

 

권력과 정의를 통한 해결

우선 권력을 통한 문제의 해결을 중시한다. 계급문제나 국제문제 등 비도덕적인 사회의 문제를 도덕적인 해결이 아닌 권력의 힘에 의해서 해결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문제로 인하여 소외되는 개인들이 모여서 하나의 집단을 만들고 그러면서 권력을 형성하고 사회적으로 권력이 나뉘게 되면서 서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다시금 힘을 합쳐서 권력의 분배를 통한 견제로 도덕성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권력과 정의라는 상반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니버는 예수의 완전무결한 사랑과 같은 사랑의 법(law of love)을 제시한다. 이런 사랑이 현실에서 이뤄지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이런 사랑을 계속 추구하다보면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 보고 있다. 물론 그가 제시한 이런 해결책이 종교적인 접근과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종교적인 가치 또한 사회를 아름답게 할 수 있는 면이 있고 이런 종교적 자원이 사회에 이롭게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사랑으로서의 법을 강조했다. 즉 맹목적인 이상과 사랑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정치적 현실을 반영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토론하면서

책의 내용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적 사고관은 사회 문제 해결의 대안이 되지 못한다. 개인의 도덕성 회복과 정치 지도자 1인의 양심을 갖고서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니버가 말했듯이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는 그 개인과는 엄격하게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현 시대의 사회는 부도덕한 개인의 문제를 지탄하는 경우가 많았다. TV에서도 개인의 부도덕한 양심을 비판하는 방송이 난무하고, 사회가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한탄하는 이들을 비웃음거리로 만들 고 있다. 모두들 이런 부분에 동의를 하였다. 사회가 우리에게 교육하는 것보다 우리는 도덕적이다. 또한 모두개인의 탓으로 돌리기엔 사회의 잘못 또한 있다. 니버의 시각처럼 개인을 깊게 옹호하지는 않지만 그동안 우리가 생각했던 문제들의 원인에는 다른 제도적 사회적 원인이 크다고 할 수 있다.

 

THE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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