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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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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전환- 우리 시대의 정치, 경제적 기원]

 

   보기만 해도 숨 막히게 두꺼운 책들이 있다. 책이 두꺼운 이유는 여럿일 테지만 그 중 하나가 저자가 책을 통해 하고 싶은 말, 던지고 싶은 질문이 풍부하고 많기 때문일 것이다. 『거대한 전환』, 이 책도 그러한 종류의 책들 중 하나이다. 거대한 전환을 통해 저자인 칼 폴라니가 600페이지 넘는 분량에 걸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칼 폴라니는 이 책을 통해 시장 자유주의, 즉 나라 단위의 사회들과 지구 경제를 모두 자기조정 시장을 통해 조직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믿음을 본질적으로 비판한다. 그는 근대의 국민국가와 시장경제가 별개의 요소들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 하나의 단일한 창작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대 국가의 발전과 시장경제의 발전이 서로 손을 맞잡고 갔으며 역사에서 이 변화들은 서로 냉혹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강력한 근대 국가는 사회 구조 안에서 변화를 추동할 필요가 있었고 일종의 경쟁적 자본주의 경제를 허용하고, 이러한 시장경제는 그 가혹한 효과를 완화시킬 목적으로 특정한 강력한 국가를 요구한다. 시장 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정치, 종교, 사회관계들에서 ‘자율적인’ 경제를 떼어 놓으면서 생기는 변화들은 이전부터 항상 존재해왔던 기본적 사회질서를 갈아버렸다. 즉 ‘사탄의 맷돌’인 것이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와 제3부는 1815년부터 1914년 까지 백년에 걸쳐 상대적인 평화와 번영을 누리던 유럽이 왜 갑자기 세계대전과 경제적 붕괴가 이어지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 2부에서 그러한 의문에 자신의 해답을 제시한다.


 19c 초 영국 산업혁명의 시대에, 영국의 사상가들은 산업화 초기의 혼란에 대응하기 위해 인간 사회가 자기조정 시장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핵심적 교리로 하는 시장 자유주의를 발전시키게 되었다. 폴라니는 시장 자유주의의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파괴와 함께 그에 대한 대응 또한 불가피했으며, 그것은 사회를 시장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일치된 노력이었다고 주장한다. 완전한 시장경제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자연, 사람, 화폐를 온전한 상품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들은 사실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상품화되지 않으려는 자기보호운동이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시장경제론자들이 제창하는 자기조정운동과 그에 저항하는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은 마치 골룸과 스미골의 간의 자아분열처럼 서로 분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보호운동으로 인해, 지구 경제를 다스리는 제도들이 여러 나라의 내부 혹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 점점 더 많은 긴장을 만들어내었다. 폴라니는 제 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백년 평화의 붕괴 그리고 대공황으로 이어진 경제 질서의 붕괴, 그가 말하는 두 번째 전환인 파시즘의 발현, 이 모두가 지구적 경제를 시장 자유주의의 기초에서 조직하려고 한 것들의 직접적 결과라고 주장한다.


 폴라니는 역사, 인류학, 철학, 사회 이론 등에 걸친 방대한 독서와 다양한 시각, 경험적인 증거에 근거하여 자신의 주장을 전개해나간다. 그는 인간은 ‘경제적 이해’로 움직이는 존재라는 전제와, 이러한 시장경제의 경제 법칙이 전 역사에 걸쳐 모든 경제와 나아가 사회까지 지배할 수 있다는 주장을 단호하게 부인한다. 이는‘신화’에 불과하며,  경제는 사회 과정에 ‘묻어 들어'(embedded) 있다는 것이다. 사회와 경제를 분리하려는 시도가 실패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가지는 유토피아주의 덕분에 시장 자유주의가 죽기 않고 계속 되살아난다. 또한 시장경제는 인류 사회의 보편적 경제 형태이기는커녕, 옛 인류사에서는 그 어디서나 부수적 존재에 불과했다. 따라서 자기조정적 시장이란, 적어도 수천 년 수만 년의 인류사에 비추어보면 ‘자연적’이기는커녕 극히 인위적인 유토피아적 망상이다. 이는 실현된 적도 없으며고, 실현될 수도 없다.


 그렇다면 폴라니는 시장자유주의는 하나의 허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이 책은 끝나는 것일까? 그는 마지막 장에서 자신의 비전을 밝힌다. 그의 비전의 핵심은 자유이다. 규제와 통제를 통하여 소수가 아닌 모두를 위한 자유를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는 모든 개인 하나하나가 우주에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사회에 실재하지만 자유라는 공준을 폐기하기 때문에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사회라는 실재를 부정하는 자유주의는 애당초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인간의지에 의해서 강압이 없는 자유란 망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권력이 강제의 기능으로 작동하는 사회 안에서 이것은 모두의 책임이며 진정한 자유는 강압과 강제, 제도의 완성 속에서 탄생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사회 실재의 현실 앞에서 스스로 체념했으며 시장에서의 자유는 종말을 가했다. 하지만 이러한 체념 속에서 사회 실재의 현실을 받아 들였고 자신의 힘으로 제거할 수 있는 불의와 비자유를 제거할 것이며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1980년대 이후, 냉전 종식 전후를 기점으로 지구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어 전 세계 정치,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시장 자유주의. 이 책이 처음 출간된 1944년 직후에는 양극화된 논쟁 속에서 폴라니의 복잡하고도 섬세한 논리의 주장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고 폴라니의 주장이 가지는 의미도 잊혀지고 말았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21세기 시장 자유주의가 너무나 당연하고도 주된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자유경쟁과 시장의 조절기능을 앞세워 대형 유통업체가 운영하는 기업형 슈퍼마켓(Super Supermarket- SSM)과 롯데마트의 ‘통큰치킨’, 타유통업체의 반값 피자들이 재래식 시장 상인들의 그야말로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현실이다. 바로 우리가 당면하고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다시금 『거대한 전환』을 주목해야한다. 두껍지만 한번쯤은 반드시 정독해봐야 할 책, 한 경제사가가 말한 "세상에는 사라지기를 거부하는 책"으로 남아있게 하는 것 아닐까 싶다.

THE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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