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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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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고전과는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사회과학부 교수이지만 어김없이 강단에 서서 동양고전의 가치를 전하고 있는 저자 신영복은 20년간의 교도소 생활을 하면서 배운 ‘자신만의 고전 읽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래서 책 제목은 ‘강의’이고, 부제는 ‘나의 동양 고전 독법’이다.

 

  그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폭풍에 당면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서있는 파편화되고 객체화된 현대인들에게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라는 화두(話頭)를 제시하고 있다. 옛 것을 자칫 쓸모없는 고물로 평가할 수 있지만, 고전은 이 시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반성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준다는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비종교적이고 현실주의적인 동양 사상이야말로 과학과 종교의 첨예한 대립에 이어 무서운 질주를 벌이고 있는 글로벌 자본주의(Global Capitalism)가 낳은 배출물을 순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동양 사상이 이런 힘을 지니는 것은 자연을 최고의 질서로 상정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인간의 차별성’(人)에서 ‘인간의 관계’(人間)로, ‘대립과 모순’에서 ‘중용’(中庸)으로 바꾸는 동양고전은 자연적인 동양 사상의 장점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동양고전이라고 하면 흔히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등 사서(四書)와 함께 『시경』, 『서경』, 『주역(역경)』 등 삼경(三經)이 있고, 노장(老莊)의 두 권의 경(經,  『노자』와 『장자』)과 『묵자』, 『순자』, 『한비자』 등을 떠올리게 된다.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상 속에서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고 이들의 사상이 그 중심에 놓이게 된다.

 

  혼란을 잠재우고 전국을 하나로 합친 진 시황제(秦 始皇帝)과 그의 모사인 이사(李斯)는 법가(法家)를 다스림의 철학으로 채택했다. 이는 철저한 형(刑)의 적용을 통한 개혁 완성과 법치주의 확립의 결과를 낳는다. 반면에 공자와 맹자의 유가(儒家) 사상은 인(仁, 어짐, 개인적 차원의 인간관계)과 의(義, 옳음, 사회적 차원의 인간관계)로써 덕치(德治)를 확립하고자 했다. 노자와 장자는 각각 무(無, 한계없음)과 소요유(逍遙由, 목적없이 떠돌음)를 통해 근원적인 질서인 도(道)를 이루려고 했다. 묵자는 협동과 전쟁 중단으로 평등 사회를 기원했으며, 순자는 악(惡)의 사회를 바로잡고 예(禮)를 세우려고 했다. 법가와 유가를 제외하고는 채택되지 못한 철학이지만, 이들은 실체로서의 성질을 중시하는 존재론이 아닌 개체와 개체를 잇는 관계론에 밑바탕을 두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러한 동양적 정서와 사유구조는 제자백가에서부터 출발하여 불교와 성리학, 양명학으로 이어진다. 옷 깃 하나 스치는 사이도 500 겁(* 1겁 =  4억 3,200만 년)의 인연이여야 한다는 인연생기(因緣生起)는 완전한 독립적 개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교의 사고관을 잘 보여준다. 모든 존재는 연기처럼 무상한 존재라는 불교의 해체 철학에 반발하여 사회질서를 지키려 했던 성리학은 높은 사회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대학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나를 닦고, 가정을 정제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든지 중용의 성즉리(性卽理), 양명학의 심즉리(心卽理) 등도 마찬가지이다.

 

  저자가 동양 고전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폐단을 극복하고 존재론적 논리에 대한 반성을 할 수 있는 해법이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학자인 막스 베버(Max Weber)의 언급은 서양과 동양의 차이를 대비해주는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는데, 그는 동양이 낙후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업과 전문성, 이기적 인간상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달리 서구는 사회와 조직을 나눠서 철저한 개별적 개체로 구성했다. 서양은 그런 방식으로 성공적인 근대화를 이루어냈지만, 개별적 존재들 간의 마찰과 충돌이라는 한계를 양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근대화 = 서구화’라는 등식이 서슴없이 쓰이고 있는 현대 사회, 그리고 현대 한국 사회는 인성과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21세기 전 세계가 당면한 문제이다. 감성보다는 이성, 관계보다는 논리가 앞서는 이 시대에서 ‘자신의 가슴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 신영복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話頭)이다.

THE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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