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의 위기: 국제관계연구입문
유토피아(Utopia)는 허황되지만 디스토피아(Dystopia)는 황폐하다.
E.H.카는 고전경제학의 아버지인 Adam Smith가 합리적, 경제적 인간(Economic Man)이라는 환상을, Saint-Simon과 Charles Fourier, Robert Owen은 공상에 불과한 사회주의를 말했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Niccolo Machiavelli의 냉엄한 현실논리가 과잉 상태에 이르면서 세계는 진보와 변화보다는 고착화와 순응에만 맴돌게 되었다는 점도 지적한다. ‘이상’만 추구하는 것은 이루어낼 수 없는 상상에 불과하고, ‘현실’만의 추구는 세계를 황량하고 피폐한 공간으로 만든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다.
1919년에서 1939년까지의 20년의 기간은 조만간 ‘진정한 세계 전쟁’이라는 거대한 혼란이 닥쳐올 위기의 순간이었다. 1914년 이전의 세계질서는 첫째, 이익의 조화(Harmony of Interest), 둘째,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으로 구성되었다. 이 두 가지 원리는 국제연맹(LN, League of Nations)으로 대표되는 국제도덕으로 보완하려는 노력이 있어왔으나, 조야한 세계 인식으로 ‘실패’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세계질서의 틀을 짜는 정책결정자들은 국제도덕의 한계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무리하게 이전 질서로의 복귀를 시도하였고 국제질서 붕괴 이후에 힘의 논리는 통제 불능 상태에 이르렀다. 현실과 이상의 충돌은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또 한번의 혼란을 불러왔던 것이다.
현실과 이상은 국제정치 속에서 ‘군사력-경제력-프로파간다’와 ‘국제도덕’에 구체화된다. 현실은 권력정치(Power Politics), 반면에 이상은 도덕정치(Moral Politics)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강대국은 강력한 군사력과 엄청난 경제적 부, 뛰어난 선전능력으로써 권력게임(Power Game)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여기서 강대국이 국제평화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거나 모든 국가들이 권력정치의 수단을 잘 활용할 수 있다면, 국제질서는 안정될 수 있다. 잘 짜인 국제도덕은 세계를 평화와 안정으로 이끌 수 있으며, 권력정치에서의 치명적인 힘의 논리의 충돌을 완화시킨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우리는 잘 짜이지 못한 국제도덕으로 인해 이미 두 차례의 거대한 전쟁을 경험했다. 이처럼 현실과 이상의 각 방법들은 잘못 쓰면 ‘독’이 될 수 있지만 잘 쓰면 ‘약’이 될 수 있다.
평화적 변경, 즉 ‘평화로의 이행’에 이르기 위해서는 현실과 이상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현실에 있어서는 ‘폭력의 위협’을 줄이기 위한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 국제관계에서는 존재한다. 이를 이익의 조화와 적자생존을 대체할 수 있는 ‘국제도덕’이라는 이상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선의와 상식만으로 평화를 지켜낼 수 있다는 과거의 환상에서 벗어난 역할 담당과 함께 평화를 지켜내고자 하는 국제적 협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에드워드 카가 자신의 저서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이상과 현실은 함께 가야한다”라는 것이다. <국제관계패러다임>의 출발은 ‘이상주의(Idealism)’와 ‘현실주의(Realism)’이었고 바로 1930년대가 이 두 가지 흐름이 맞물리던 시기였다. 덕분에 카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각각의 이점과 한계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었고, ‘절충’이라는 대안을 제시했던 것이다.
70여 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도 국제관계에 있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충돌은 계속되고 있다. 국제연합(UN, United Nations) 같은 국제조직이 미국 등의 일부 강대국에 의해 주도되는 상황과 전 세계의 행위자들이 힘의 논리로서 대립하는 상황은 ‘평화’를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만약 현 시점에서 세계 정책결정자와 세계 시민들이 카가 전하는 교훈을 되새긴다면 어떨까? 그에 따르면, 오직 현실만을 혹은 오직 이상만을 추구하는 세상은 최악의 결과만을 낳을 뿐이므로 이상과 현실을 함께 추구하여 보다 아늑하고 편안한 세계라는 최선의 결과를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
THE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