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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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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풍경

by 김두식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고안된 법이 오히려 국민으로부터 유리되는 현상은 어쩌면 보편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 헌법에 규정된 법률용어 자체가 일상용어와 유리된 단어인지라 국민들은 반사적으로 법과의 괴리감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법이라는 것은 논리적 판단에 의하여 규정되기 마련인데 모든 국민이 전 분야에서 논리적 판단을 할 수는 없기에 법에 대한 이해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국가는 법률 전문가를 양성하여 국민과 법의 거리를 좁히기 위하여 노력한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법과의 유리를 넘어서서 법에 혐오를 느끼는 듯하다. 특히 가장 가까운 곳에서 국민을 보호해야 할 법률 전문가들로부터 가장 큰 거리감을 느끼는 것이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독재 정권 하에서 법률 전문가들은 독재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다. 이는 법률 전문가에 대한 엘리트적 환상과 부패를 답습하는 법조계에 대한 혐오라는 이중적 잣대를 형성하였다. 법률 전문가 출신의 저자는 이러한 한국 법조계와 국민 사이의 괴리를 여과 없이 드러내며 책의 시작을 알린다.


법은 ‘정의(正義)’를 실현하는 하나의 도구이다. 그러나 ‘정의(正義)’를 ‘정의(定意)’하는 기준 자체가 주관적이기 때문에 ‘정의(正義)’는 객관적으로 표현될 수 없는 본질적 한계를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법조계는 정의에 대한 실체적 진실만을 고집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한국 사회에 만연하게 퍼져있는 단 하나의 정답만을 인정하려는 풍토가 법철학에서도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대화를 통한 절차적 진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정의에 대한 한국 법철학의 원론적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점의 원인을 짚고 넘어가야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하여 저자는 ‘국가’에 대한 논의를 펼쳐나간다. 법이란 국가를 전제로 하며, 국가를 통제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라는 개념 자체가 추상적 개념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법을 통한 국가에 대한 통제 또한 한계점을 지닌다. 결국 국가는 언제든지 ‘괴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서 자행된 홀로코스트와 박정희 정권 하의 실미도 사건은 괴물로 변해버린 국가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소수의 독재자들이 법이라는 통제장치를 자신의 무기로 둔갑시켜 국가를 괴물로 변화시킨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국가가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국가에 복종하는 법률가’들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점이다. 법률가들이 국민을 보호하는 법의 기본 정신을 망각하고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에 눈이 멀어 소수의 독재자에게 봉사할 때에 법은 통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나아가 이러한 법률가들이 이미 괴물로 변해버린 국가에 복종하게 될 때에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하여 그들만의 기득권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독재 정권 하에서 법률가들은 국민이 원하는 정의보다 국가 권력이 요하는 정의로 판단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에 더하여 검사 개인의 주관적 판단을 적극적으로 존중하는 기소편의주의와 기소독점주의는 검찰이 국가 권력에 맞춤 봉사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주었다. 이는 변호사보다는 판검사임용을 선호하는 논리로, 민주화된 한국 사회 내에서 그 누구도 검찰을 견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현재의 법조계를 비관적으로 조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 법률가에 비하여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가지고 다양한 진로를 향해 나아가지만 법률가 본연의 임무에 충실히 임하는 ‘똥개 법률가’ 시대의 도래를 예견한다. 더불어 과거 법조계에 의하여 짓밟혔지만 ‘똥개 법률가’ 시대에 복원될 세 가지 권리에 대하여 서술한다. 기본권에 대하여 보장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 인권 침해에 대해 전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말하지 않을 권리’, 모든 국민의 평등함을 보장하는 ‘차별금지’가 바로 그것이다. 비록 오랜 시간동안 존중받지 못하였던 권리이지만 이제부터라도 국민들이 떳떳하게 자신의 기본적 권리를 내세우기를 희망하는 저자의 바람인 것이다.


민주화가 진행됨에 따라 법조계는 변화를 거듭하였지만 과거의 뼈아픈 역사는 아직도 법조계의 뼈대를 관통하고 있는듯하다. 현재도 한국 사회에 끊임없이 제기되는 사법부의 투명성 문제는 한국 법조계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의를 논하는 한국 법철학이 절차적 정당성을 통해 이루어지려면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가 제시한 제도적 해결책인 미국식 로스쿨 도입, 법조 일원화, 배심 제도 등은 의미 있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비록 근본적인 해결책은 국민의 의식 개혁에 있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민들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해결책이다.


자신을 이류 학자로 정의내린 저자의 겸손함은 어쩌면 법조계의 엘리트 계층에 대한 외로운 싸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똥개 법률가’들이 있기에 저자의 싸움은 조금 외롭더라도 든든한 싸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법조계에 대한 회의적인 관점으로 법과 유리되기 전에 이 겸손하고도 당당한 이류 학자의 편에 서 보기를 권한다.

THE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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