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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체스판

  ‘거대한 체스판’은 무엇을 비유한 것일까? 책을 펼치기에 앞서 한 번 고민해 본다면 어렵지 않게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체스는 킹을 잡는 쪽이 이기는 게임으로 전쟁의 축소판과 같다. 때문에 게임에 참가한 사람은 상대방의 수를 읽을 줄 알아야 하며, 더 나아가 몇 수 예측하여 전략을 구사하여야 한다. 즉, 거대한 체스판은 세계지도이며 미국이라는 참가자가 패권 유지를 위해 고려해야 할 지정학적 전략들을 펼쳐놓고 있는 것이다.

  카터 행정부의 외교를 전담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ezezinski)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세계 어느 곳도 미국의 체스판이 아닌 곳이 없을 것이다. 현 시점에서도 미국이라는 행위자는 심혈을 기울여 다음 말을 놓을 수를 고민하고 있다. 이는 세계 단일패권축인 미국이 맡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의무인 셈이다.


  국제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미국의 단일 패권에 도전하고자 하는 중국의 야망은 거세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유라시아 국가가 아닌 미국은 대국굴기(大國崛起)를 주창한 중국을 적절히 통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들에게 밀려 동아시아에서 짐을 싸는 날에는 단일패권의 두 개의 핵심 축 중에 하나가 무너지는 것이고, ‘아메리카 인의 사명(
Manifest Destiny)’1)을 더욱 지키기 어렵게 된다.


  유럽의 상황도 좋지만은 않다. 공산권의 지도국이었던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로 한 숨 돌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후예인 러시아가 이데올로기적 구조 파괴의 후폭풍을 잘 추스르고 오일과 가스 등 천연자원을 무기로 부활을 꿈꾸고 있다. 동지인지 적인지 구분이 안 가는 프랑스의 도전도 버겁다. 그나마 반미·반패권적 세력에 대항마가 되어준 친구 독일도 최근 중동에 대한 과도한 행태와 통화 개입 등을 두고 미국을 향해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두 개의 축만이 아니다. 브레즈네프와 카터 시대에 끊임없이 밀고 당겼던 중앙아시아도 문제의 여지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호메이니 혁명 이래로 이란을 놓치고 말았지만 대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통해 러시아의 매서운 기세를 잠재우고자 노력 중에 있다. 반면에 러시아는 독립국가연합(CIS)와 상하이협력기구(SCO)2)를 통해 ‘유라시아의 발칸’(즉 중앙아시아) 지역의 결집을 이룬 상태이고, 우크라이나에서는 친미적인 오렌지혁명세력의 붕괴와 친러파 득세로 쾌재를 외치고 있다. 이 상태로 반미·반패권연대가 결집이 된다면 미국으로서는 난처한 입장에 놓이기에 충분하다.


  소련이 무너짐으로써 미국은 일시적으로 혼란에 휩싸였다. 미국의 정책결정자와 전략가들은 온 세상이 공산화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 세계전략을 짜왔는데, 공산권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면서 대양에서 표류하는 배 마냥 목적을 잃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 대해 브레진스키는 우려스러웠던 것이고, 미국의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새로운 세계전략을 주문했던 것이다.

  지난 20년 간 유라시아는 미국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그러하지 못하다. 미국의 반발심과 각 국가들의 패권적 야심이 뭉쳐지면서 미국의 입지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거대한 체스판』을 통해서, 이미 20여 년 전에 미국 중심의 단일패권이라는 당시의 상황을 하나하나 분석하여 다원적 경쟁체제로 변하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상을 예측한 브레진스키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세계 전략은 이것이다. “미국의 전략은 이원적이여야 한다. 협력하면서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1) 명백한 사명(Manifest Destiny) : 오직 미국만이 세계평화와 번영을 위해 국제 분쟁 등의 상황에 개입할 수 있다는 이상주의적 구호


2) 상하이협력기구(SCO, 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 과거 소비에트 연방에 속했던 국가들(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과 중국을 회원국으로 하는 국제협력기구. 2011년 현재, 인도와 이란 등의 국가를 가입시키면서 지역적 영향력을 확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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