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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식의 유럽 톺아보기] 2025년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유럽 정치경제

    • 등록일
      2025-01-16
    • 조회수
      15

[조홍식의 유럽 톺아보기] 2025년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유럽 정치경제

 

유럽연합의 정치경제가 단단히 고장난 모습이다. 유럽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하는 독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의 환자’로 돌변했다. 2022년과 23년에 이어 3년째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예정이다. 프랑스 경제도 2024년 미약하게나마 성장이 예상됨으로 사정은 독일보다는 낫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상당 부분 국내총생산 6%에 달하는 재정적자 덕분이며 중기적인 문제는 110%를 넘어선 공공부채 수준이다.

 

‘짠돌이 독일’은 경제가 어려워도 계속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침체의 늪으로 빠지는 모습이라면, ‘베짱이 프랑스’는 빚으로 경제를 돌리며 미래의 부담을 잔뜩 늘려가는 상황이다.

 

독일·프랑스, 안정적 정부 형성 쉽지 않아

 

유럽경제의 쌍두마차 독일과 프랑스는 공교롭게도 둘 다 국내 정치의 혼란을 겪고 있다. 독일은 지난 2021년 총선에서 비롯된 빨간 사회민주당, 푸른 녹색당, 그리고 노란 자유민주당의 ‘신호등 연정’이 지난해 말 무너졌다. 세 정당의 정책적 방향이 너무나 다양해 조정이 어려웠던 데다 올라프 숄츠 총리도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일에선 다음 달 총선을 앞두고 선거 캠페인이 한창이다. 현재 중도우파의 기독교민주당(CDU)/기독교사회당(CSU) 연합이 30% 정도의 지지율로 선두를 달리고 있어 정권교체 가능성이 크다. 다만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20%의 지지율로 2위를 점하고 있어 향후 안정적 정부가 형성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극우 부상으로 정세가 혼란스러운 것은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는 작년 여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새로 치렀다. 그러나 극우 민족동맹(RN)이 득표율 제1당으로 부상했고 의회는 다수연합을 형성하기 어렵게 여러 세력으로 분할된 상황이다. 가을에 미셸 바르니에 총리의 내각을 출범시켰으나 몇달 가지 못하고 의회에서 불신임 투표로 붕괴했다. 겨울에 프랑수아 바이루 내각을 다시 세웠으나 여전히 의회 다수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해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다.

 

프랑스 헌법은 한번 의회를 해산하면 이후 1년 동안은 다시 해산할 수 없다. 올여름이 되어야 새로운 총선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극우와 극좌가 큰 세력을 차지하는 현재의 의회에서는 안정적 정부의 구성을 기대하기 어렵고 따라서 프랑스의 정치 불안은 계속될 예정이다.

 

프랑스와 독일의 사례는 다당제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셈이다. 민주적 관점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의회에 반영되는 다당제는 바람직하나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정부를 구성해 국가를 운영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다. 특히 요즘처럼 무책임한 극우나 극좌 세력이 기승을 부리면 중도 정부의 형성 자체가 어렵다.

 

스페인·폴란드가 그나마 안정적 성장

 

물론 다당제나 불안한 정국이 반드시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것은 아니다. 스페인은 현재 하원에 12개의 정당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스페인은 2015년, 2016년, 2019년 2회, 그리고 2023년까지 모두 5차례나 총선을 치렀다. 게다가 현재 페드로 산체스 총리의 정부도 의회에서 다수를 확보하지 못하고 여러 군소정당의 지지로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스페인은 독일이나 프랑스와는 달리 경제만큼은 성공적으로 성장의 가도를 달리고 있다.

 

2024년 스페인의 경제 성장률은 3%로 유럽의 선두그룹에 속한다. 2010년대 유로 위기 때만 하더라도 스페인은 PIGS라 불리는 지중해 ‘문제아 그룹’ 국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제는 유럽의 성장을 이끄는 기관차로 우뚝 선 셈이다. 정치적 불안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경제를 지탱하는 동력은 한마디로 개방성이다. 우선 스페인은 이민을 통해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이며 특히 라틴 아메리카로부터 대규모 이동이 이뤄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이민을 떠나는 나라에서 이민을 받아들이는 국가로 탈바꿈했다.

 

게다가 스페인은 관광대국으로 코로나 위기가 종결되면서 지난해에는 9000만명의 외국인이 방문했다. 해외 방문객을 맞는 호텔 레스토랑 공연 등 서비스 부문에 이민자가 노동을 제공하는 개방경제의 전형이다. 마지막으로 스페인은 코로나 극복을 위한 유럽연합 차원의 지원 프로그램에서 이탈리아 다음으로 큰 수혜국이다. 유럽의 예산이 스페인에 집중적으로 투입됨으로써 경기 활성화에 공헌했다는 뜻이다.

 

스페인과 함께 유럽경제를 이끈 나라는 올해 3.5%의 성장률이 기대되는 폴란드다. 유럽연합 통계청은 중기적으로 2019년부터 2028년의 기간에 폴란드의 국내총생산이 30% 정도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경제 발전의 낮은 지점에서 출발한 동유럽 국가들이 높은 성장을 기록하나 그중에서도 폴란드와 크로아티아(31%)가 돋보인다.

 

폴란드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 부문에서도 발전을 이룩한 훌륭한 경우다. 지난 2023년 총선에서 8년 동안 폴란드를 이끌며 민주화를 퇴보시킨 법과정의당(PiS)의 집권을 끝내고 도날드 투스크 총리의 자유주의 정부가 들어섰다. 유럽연합에서 빅토르 오르반의 헝가리와 함께 권위주의 동맹을 형성하여 비난과 소외의 대상이었던 폴란드는 이제 정치와 경제 양면에서 모두 모범적 선두주자로 두각을 나타내는 형국이다.

 

스페인과 폴란드의 경제가 선전하더라도 독일이나 프랑스의 침체를 만회하기는 무리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세 나라를 합치면 유럽연합 경제의 절반이 넘는 비중을 차지한다. 2024년 이탈리아는 0.5% 성장률로 독일의 마이너스 성장(-0.1~-0.2%)보다는 높으나 프랑스(1.1%)에는 뒤지는 형편이다.

 

이탈리아가 그나마 선전하는 부문은 역설적으로 극우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집권한 뒤 보여주는 정치의 안정성이다. 멜로니는 유럽에서 우려했던 것처럼 오르반 식의 반유럽적 태도와 정책을 펴지 않고 오히려 유럽연합과 잘 화합하면서 러시아에 대해서도 강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점에서 멜로니는 ‘극우 정치의 일상화’를 선도하는 셈이고 프랑스에서 극우 마린 르펜의 집권가능성을 높이는 데 일정하게 공헌하고 있다.

 

트럼프가 가져올 불확실성이 가장 큰 문제

 

2025년 유럽 정치경제의 외환(外患)은 코앞으로 다가온 미국 도널드 트럼프의 집권이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트럼프가 가져오는 불확실성은 유럽의 생존을 좌우하는 문제다. 특히 전쟁조차 불사하는 푸틴의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유럽연합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시대에 유럽은 자율적 국방능력을 키워야 하는데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대국이 모두 경제적 침체에 돌입했으니 재정적 여유가 없는 막다른 골목이다. 이에 더해 트럼프는 관세정책을 통해 유럽에 더 많은 미국 상품을 구매하도록 압력을 넣을 태세다. 유럽은 이미 미국의 가스나 농산품 등을 살 채비를 하는 중이다.

 

유럽에서 최근 가장 커다란 걱정은 트럼프의 미국이 외교·안보나 경제 부문의 압력을 넘어 유럽의 민주주의 사회 모델을 협박하고 붕괴시키는 시나리오다. 유럽은 디지털 경쟁에서 미국이나 중국에 뒤처짐에도 불구하고 규제를 통해 미국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을 통제해 왔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가 최근 보여주듯 이제는 대자본가가 트럼프정부와 유착해 유럽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다. 스타링크나 X(트위터) 같은 커뮤니케이션의 지구적 플랫폼과 인프라를 소유하는 머스크는 유럽 극우세력을 노골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도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트럼프의 곁에 서서 유럽연합의 각종 규제를 비난하고 나섰다.

 

실리콘밸리의 디지털 인프라와 트럼프의 미국 제일주의 통상정책이 힘을 합쳐 유럽의 사회 모델을 위협하는 와중에도 유럽은 무기력한 침묵모드다. 취임 직전에 트럼프의 심기를 건드리면 곤란하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고 자중하는 모양새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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