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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식의세계속으로] 프랑스 의회와 옷차림의 정치

    • 등록일
      2023-03-14
    • 조회수
      116
극좌단체, 정장·넥타이 거부 원내 복장 논쟁
“공화국·국민 존중 담아야”… 변화 시도 실패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입법 활동을 위해 의회에 모일 때 어떤 옷차림이 적절할까?

지난해 여름부터 프랑스 의회를 달구는 논쟁이다.

한편에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면 국민과 가장 비슷한 차림새가 좋다는 주장이 있다.

가볍고 간편한 의류도 좋고 작업복이나 운동복도 나쁘지 않다는 시각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나랏일을 논하는 장소에서는 최소한 정장 차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누구라도 수영할 때는 수영복을 입고 결혼과 같은 의식을 치를 때는 예를 갖춰 옷을 챙겨 입듯이

국민을 대표하여 입법을 논의하는 장소에서는 정장과 넥타이 같은 형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프랑스에서 정장과 넥타이를 거부하면서 수수한 복장을 고집하는 측은 극좌에 뿌리를 둔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라는 정치 세력이다.

이들은 정장과 넥타이처럼 값비싼 옷차림은 국회의원의 오만함을 상징하는 것이며

저렴한 복장이야말로 프랑스 인민을 존중하는 태도라고 외친다.

정치 지형에서 극좌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정반대 편에 자리 잡은 극우 ‘민족연합’은 의원 전원이 정장 차림으로 국회 회의에 참석함으로써

자신들이 극단적 세력이 아니라 평범하고 점잖은 사람들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지난해 7월 온건 보수 세력도 하원의장에게 복장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면서 원내 옷차림 전쟁에 불을 지폈다.

의회에서의 옷차림은 공화국에 대한 존중을 담아야 한다는 논리다.

프랑스 의회 의장단은 지난해 11월 “적절하고 과하지 않은(neutral) 복장이 필요하며 느슨하거나 소홀한 옷차림은 피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정장 상의는 이제 필수이며 가급적이면 넥타이를 매는 것이 좋다는 규칙이 세워졌다.

 

현대 민주주의의 고향을 자부하는 프랑스는 230여년 전 대혁명 시대부터 국민대표의 옷차림에 관한 논의가 뜨거웠다.

1789년 대혁명 직후 의회는 신분제를 철폐하면서 신분에 따라 의복이 규정되었던 전통을 폐지했다.

그리고 평등의 정신에 따라 모든 의원이 같은 옷을 입도록 강제했다.

학교에 교복이 있고 군대에 군복이 있듯 의회에는 의원복(議員服)이 존재했다는 뜻이다.

 

프랑스에서 의회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린 19세기 말, 복장은 자유로워졌으나

실제로는 거의 모든 의원이 짙은 양복과 넥타이 차림으로 통일되었다.

당시 의회 문화는 옷차림으로 튀는 것보다 연설을 잘하는 것이 의원의 중요한 자질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20세기에는 좌파가 부상하면서 노동자 출신 공산당 의원들이 대거 국회에 입성했다.

이들 역시 진보 세력의 혁명 정신과는 별개로 부르주아의 양복과 넥타이 차림을 수용함으로써

공화국 전통에 대한 존중을 표했다. 일할 때는 노동자 복장이라도 중요한 행사에 갈 때는 옷을 차려입는다는 논리였다.

실제 공산당, 사회당이나 노조 대표들은 국회뿐 아니라 시위에 참여할 때도 정장 차림이 대부분이었다.

 

프랑스는 여러 면에서 자유롭고 다양한 사회지만 의회나 공적 행사에서 옷차림만은 매우 보수적이고 획일적인 전통이 지배해 왔다.

이번에 변화를 시도한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세력도 결국은 이런 전통을 깨는 데 실패했다.

프랑스에서 국민대표들이 모인 의회야말로 신성한 무대이며 그 때문에 사회적으로 공인된 예복과 차림에서 벗어나는 행동은 국가와 민족에 대한 모독이라고 여긴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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