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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식의세계속으로] 심느냐 깎느냐, 탈모가 문제로다

    • 등록일
      2021-04-20
    • 조회수
      227

모발 재분배 대세… 삭발로 개성 표현도
유전과 노화 극복 ‘프로메테우스의 욕망’

 

삶과 죽음 사이에서 번민했던 셰익스피어의 햄릿만큼 심각하지는 않더라도 모발 미용은 많은 세계인의 고민거리다. 특히 탈모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현대 사회는 가혹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사회는 얼마나 편리했는가.

 

한반도의 상투나 중국의 변발 모두 탈모자의 고민을 덜어주는 헤어스타일이다. 유럽에서는 아예 오래전부터 가발과 모자가 유행하여 탈모가 드러날 일이 별로 없었다. 유대인의 키파나 이슬람 지역의 셰샤, 인도 시크족의 터반 등의 모자는 모두 종교·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일상의 장치다.

 

특정 외모를 강요하던 전통의 족쇄는 풀리고 이제 개성을 마음껏 드러내는 세상이다. 하지만 탈모자에게 근대의 자유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했음을 뜻한다. ‘대머리’는 온갖 편견과 농담의 대상으로 떠올랐고 사람들은 이를 감추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한다.

 

옆머리를 길러 빈 부분을 가리는 방식은 어디서나 유행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교외로 도심을 덮는다고 말한다. 또 유럽에서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가발은 동아시아에서 대중의 시대를 열어 거대한 산업을 촉발했다.

 

21세기 지구촌을 달구는 탈모 대응법은 크게 두 종류다. 하나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가능해진 모발의 재분배다. 자신의 모발이 촘촘한 부분에서 뽑아 다른 곳에 나눠 심는 방법이다. 프랑스에서는 4월 초 ‘탈모 탈출’(Antichute)이라는 소설이 출간되었을 정도다. 유럽에서 수술비가 워낙 비싸서 터키 이스탄불까지 가서 모발을 이식하고 오는 20대 청년의 정체성 이야기다. 모발 이식이 성형의 국제경제와 새로운 문학 소재를 탄생시킨 셈이다.

 

남은 머리를 면도하듯 깎아버리는 과격한 방법도 있다. 심는 방식이 모발을 살리는 재분배라면 삭발은 강한 부정이다. 실제 불교에서 삭발이란 속세의 삶을 포기하는 과정이다. 한국에선 또 정치인들이 삭발을 통해 절박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 때문인지 삭발로 탈모에 대응하는 방식은 한국이나 동아시아에서 그리 인기가 없다. 전통문화적 의미가 너무 강하면 개성 표현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듯.

 

반면 미국이나 유럽에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삭발 패션을 선택한다. 동양에서 삭발 머리가 불교 수도자를 연상시킨다면 유럽에서는 스킨헤드라는 폭력집단의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있다. 스킨헤드란 이름은 1960년대 머리카락을 낚아채는 기마경찰을 피하려고 머리를 박박 깎은 영국의 백인·남성 우월주의 집단에서 유래한다. 이 집단이 점차 사라지면서 사회적 인식도 변한 것이다.

 

모발 이식이 다수의 대세를 따르는 추종적 태도라면 삭발은 강한 개성을 드러내는 전략으로 보인다. 머리는 박박 밀고 수염은 길게 기르는 스타일도 등장하고 삭발 머리를 색깔 문신으로 꾸미기도 한다. 삭발 머리를 위한 특수 로션 등 화장품 산업도 붐이다. 물론 서구에서도 삭발 머리를 보면 눈이 부시다는 표정을 지으며 놀려대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편견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젊음을 상징하는 풍성한 모발 추구와 도발적 의지의 삭발 머리는 대조적으로 보이지만 동전의 양면일 수 있다. 자연스러운 유전과 노화 현상을 극복해 보려는 프로메테우스의 욕망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어쩌면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무위(無爲)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선택일지도 모른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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