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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신문] 코로나와 브렉시트가 앞당긴 유럽통합 (20.08.11.)

    • 등록일
      2020-09-17
    • 조회수
      203

2020년 여름은 유럽통합이 커다란 진전을 이룩한 역사적 순간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유럽연합 27개 회원국 정상들이 지난달 21일 결정한 7,500억 유로 규모의 경제회생 대책은 그만큼 획기적이다. 여름 휴가철이 끝난 뒤 이 결정이 유럽의회에서 통과되고 비준과정을 무사히 마친다면 유럽연합은 공동 재정정책의 첫 걸음을 내딛을 예정이다. 1999년 함께 사용하는 단일화폐를 출범시킨 이후 21년 만에 재정통합의 첫 단추를 끼게 된 셈이다.

 

물론 이번 대책이 유로의 출범처럼 단숨에 여러 나라의 화폐를 하나로 묶어버리는 엄청난 결정은 아니다. 또한 예산의 규모도 일반 국가의 수준과 비교해 보면 아직 초보단계다.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유럽연합은 자체의 예산을 동원하여 회원국에 대출뿐 아니라 상환의무가 없는 보조금까지 지원하고 나설 예정이다. 또한 소요 예산에 대해 각 회원국이 아니라 유럽연합이 공동으로 책임을 지는 재정통합의 원칙을 확립했다.

 

하나의 유럽을 만드는 데 재정을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은 무척 오랜 역사를 갖는다. 가깝게는 2010년대 유럽이 하나의 화폐를 사용하는데 재정은 국가별로 운영하다보니 그리스나 이탈리아 등 남유럽이 위기를 맞아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는 비판이 일었다. 독일이나 그리스처럼 경쟁력 수준이 다른 나라들이 단일화폐를 사용하려면 재정을 통해 불균형을 보완해 줘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도이치마르크라는 자국 화폐를 포기한 것도 이미 큰 양보라고 생각했던 독일은 공동 재정은 수용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한 심각한 경제 위기는 독일의 정책 변화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유럽은 올해 적어도 마이너스 10%를 상회하는 침체를 기록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유로 위기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남유럽 지역이 코로나 위기에서도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자칫 잘못하면 70여 년 동안 쌓아올린 통합의 탑이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고조되었다. 유럽연합과 단일시장이 무너지면 잘나가는 독일경제도 안마당을 잃는 셈이다. 독일이 변한 이유이며 코로나 위기가 유럽통합의 진보를 가져왔다는 등식이 성립되는 이유다.

 

이번 경제 활성화 정책을 결정하는데 유럽의 정상들은 나흘 밤을 새면서 회의를 했다. 유럽의 경제 중심인 독일과 프랑스가 힘을 합쳐 정책을 추진했지만 27개국의 만장일치 합의를 도출해 내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네덜란드를 위시한 일부 국가들은 예산의 오용이나 낭비 등을 이유로 들어 재정통합에 미온적인 입장이었다.

 

만약 영국이 브렉시트로 유럽에서 탈퇴하지 않았더라면 재정통합에 반대하는 국가들을 이끄는 기수의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다. 영국은 1973년 유럽 가입 때부터 2020년 초 탈퇴할 때까지 모든 통합의 진전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거나 적어도 자신은 불참하는 선택을 해 왔기 때문이다. 단일화폐 유로에 동참하지 않은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따라서 독일이나 프랑스만큼 대국으로 강한 목소리를 내는 영국이 EU에 있었더라면 재정 통합을 위한 합의는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난 2월 유럽연합에서 탈퇴에 ‘성공’한 영국의 요즘 모습은 초라하다. 원래 브렉시트의 목표는 유럽 대륙에 엮이지 않고 세계적 운명을 개척해 나가겠다는 ‘글로벌 브리튼’의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번 달 초 미국과 무역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대화는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영국의 존슨 내각이 트럼프 행정부에 보조를 맞춰 중국 때리기에 동참했는데도 말이다. 여전히 가장 중요한 무역 파트너인 유럽연합과의 실무 협상도 진전이 없다. 코로나 위기가 경제를 워낙 심각하게 망가뜨려 브렉시트의 부정적 효과가 은폐되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브렉시트의 또 다른 목표는 이민이나 난민의 유입을 줄이는 것이었지만 절대적인 외국인의 유입은 줄어들지 않는 상황에서 유럽연합에서 오는 사람들만 대폭 축소되었다. 반면 외국 자본과 기업은 영국에서 대륙으로 이동 중이다. 브렉시트로 인해 유럽연합의 규모는 양적으로 줄어들었지만 통합을 위한 질적 기반은 더욱 강화된 모습이다.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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