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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설명
  • [조홍식의 세계속으로] 레바논의 기적과 베이루트의 폭발 (20.08.10.)

    • 등록일
      2020-09-17
    • 조회수
      201

다양한 집단·종교 공존하는 개방적 사회
폭발로 기적 같은 균형이 무너질까 우려

 

지진으로 착각할 정도의 엄청난 폭발 사고가 베이루트를 강타했다. 도시의 심장인 항구가 통째로 붕괴되어 버린 참혹한 광경은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히던 베이루트는 상처투성이다. 수천명의 사상자와 수십만 이재민이 발생한 데다 도심의 건물들이 심각하게 파손되거나 무너져버렸다. 베이루트 참사가 유독 가슴 아픈 이유는 레바논이라는 나라가 짊어진 희망과 상징성 때문이다.


레바논은 인류 역사의 요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원전 5000년 경에 이미 발전된 도시를 형성하였으며 이곳에서 꽃피운 페니키아 문자는 유럽으로 전해져 그리스와 라틴 알파벳의 모태가 되었다. 해외를 적극 개척하여 무역 제국을 세운 페니키아인들은 지중해를 지배했다. 일례로 로마 제국과 경쟁한 한니발의 카르타고는 원래 페니키아가 세운 식민 도시였다.


레바논 사람들의 해외 진출은 현대까지 이어져 국내에 사는 사람보다 해외 교포가 2∼3배나 더 많을 정도다. 국내에는 400만명 남짓 거주하지만 브라질에만 600만명 정도의 레바논계가 살고 있다. 중국 출신 화교가 동남아의 상업을 지배하듯이 레바논 상인들은 아프리카 상권도 꽉 잡고 있다. 그만큼 부지런하고 성공적인 세계적 디아스포라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레바논은 무척 다양한 집단이 모여 사는 기적 같은 나라다. 레바논은 자국민이 400만명이지만 난민이 200만명에 달할 정도로 외국인이 넘쳐난다. 이스라엘에서 온 팔레스타인 사람 50만명에다 최근 시리아에서 150만명의 난민이 더 넘어왔다. 레바논 국민 또한 다양한 종교로 나뉜다. 4∼5세기 형성된 레바논 특유의 기독교인 마론교부터 7세기부터 유입되기 시작한 이슬람의 수니와 시아파, 그리고 11세기 시아 이슬람에서 독립한 레바논 고유의 드루즈파까지 모두 18개의 공인 종교집단이 있다. 같은 이슬람끼리도 전쟁을 일삼는 서남아시아에서 다양한 종교가 한 사회에서 공존하는 레바논은 놀랍다.


레바논이 기적인 또 다른 이유는 높은 교육열과 두꺼운 중산층, 그리고 비교적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다. 레바논은 서남아시아에 있지만 사우디아라비아나 걸프만 산유국들처럼 천연자원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높은 교육과 생활 수준을 유지해 온 것이다. 성차별 같은 봉건적 요소를 타파하고 개방적 사회를 유지한 결과다.


물론 레바논의 아슬아슬한 균형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취약한 상태를 이어왔다. 1975년부터 1990년까지는 내전이 이어졌고 이후에도 외부세력의 개입은 국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사우디가 수니파를, 이란은 시아파를 각각 지원하는 한편, 서방은 기독교를 보호하겠다고 나서는 혼란 속에 최근에는 화폐가 80%나 절하되는 심각한 경제위기에 빠졌다.


이번 폭발은 6년 전 러시아 배가 아프리카 모잠비크로 이동하다 방치한 질산암모늄 수천톤 때문이다. 초현실적인 황당한 사고로 인해 레바논의 기적 같은 균형도 확실하게 무너졌다. 시민 봉기로 여기서 새로운 질서가 싹틀지,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조국을 포기하고 다시 이민의 길로 나설지 알 수 없다. 아시아와 유럽, 기독교와 이슬람, 그리고 고대와 현대가 만나는 베이루트에서 자유롭고 화려한 미래가 다시 열리길 간절히 바란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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