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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식의 세계속으로] 아타튀르크의 선물 빼앗은 술탄 (20.07.13.)

    • 등록일
      2020-09-17
    • 조회수
      256

터키 에르도안, 성소피아 모스크로 전환
인류 공동자산 정치 이용… 宗·政 분리 외면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빛나는 역사의 도시 이스탄불에서 성소피아 박물관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정신이 공존하는 인류의 문화 자산이다. 터키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라도 제일 먼저 달려가서 보고 싶은 유적이다. 박물관이란 국적이나 종교를 불문하고 누구나 자유롭고 편안하게 역사를 호흡하고 나름 상상의 나래를 펴며 생각을 가다듬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이 박물관이 오는 24일 금요일부터는 이슬람 신도들이 예배를 드리는 모스크로 전환될 예정이다. 2003년부터 집권하면서 독재 체제를 굳혀온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주도하는 종교의 정치화다. 이슬람이 국민의 대다수임에도 불구하고 종교 중립 국가의 전통을 지켜왔던 터키다. 하지만 에르도안은 지난 17년 동안 국민의 신앙심을 자극하여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려는 위험한 전략을 펴왔다.


이번 조치는 가까운 이웃 그리스나 러시아의 강력한 반발을 불렀고, 유네스코와 같은 국제기구나 유럽과 미국 등도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이것은 바로 에르도안이 노리는 바다. 외세가 반발할수록 터키 국민을 자극하여 민족주의 반응을 초래할 것이고, 경제정책의 실패나 독재에 대한 불만을 은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어느 종교나 권력도 명당에 대한 열망은 공통이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물과 육지가 만나는 광경은 황홀하다. 성소피아가 바로 그런 장소에 있다. 원래 그곳에는 고대 그리스 문명의 아폴론 신전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 신전 자리에 로마제국에서 처음 기독교 세례를 받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4세기에 성당을 지었고, 6세기에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세계 최대의 돔을 자랑하는 대성당을 건축했다. 성소피아는 거의 천년 동안 기독교 세계를 대표하는 건축의 아이콘이었다.


오죽하면 1453년 이 지역을 점령한 오토만제국의 메흐메드 2세가 대성당을 이슬람의 모스크로 사용하겠다고 선언했겠는가. 원래 오토만 세력은 점령지역의 성당을 파괴하곤 했는데 성소피아만큼은 워낙 위대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라 차마 부술 수 없었다는 뜻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리모델링한 성소피아 이슬람 사원이 오토만제국 모스크의 모형으로 부상하여 곳곳에 재생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현명한 군주의 포용적 문화 정책은 화려한 유산을 낳는다.


기독교 역사의 천년을 짊어진 성소피아는 15세기부터 이슬람 역사의 오백여년을 더했다. 그리고 20세기 근대 터키를 건설한 케말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은 성소피아를 이슬람을 넘어 인류 전체에 선사했다. 종·정(宗政) 분리의 신념을 가졌던 아타튀르크는 1934년 모스크의 기능을 종결시키면서 성소피아를 국가가 관리하는 박물관으로 선포했던 것이다. 성소피아는 어느 한 시대 그 장소를 지배하는 권력이나 민족의 소유가 아니라 인류 공동의 자산이라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가치를 높였다.


이처럼 종교와 정치는 위대한 지도자를 만날 때 넓은 마음으로 다양한 세상을 품는다. 반면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자극함으로써 자신의 정치 기반을 닦고, 민족 갈등과 종교 분쟁을 조장하는 권력자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혼란으로 치닫는다. 2020년, 불행하게도 시간을 역주행하는 수많은 에르도안이 너무 쉽게 눈에 띈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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