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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시사매거진]조홍식의 부국굴기(富國屈起) – 자유시장경제의 원류를 찾아서(21) 부(富)가 풍선처럼 부푸는 도시국가 싱가포르 (20.08.17.)

    • 등록일
      2020-09-17
    • 조회수
      251

독재와 자유가 공존하는 자본의 천국

국가 주도로 강소국 이점 극대화, 인구 570만 세계 최상위 선진국
청렴한 엘리트 관료의 합법적 일당 통치… 중국 공산당의 롤모델

▎바다를 메운 땅에 세워 올린 마리나베이 샌즈. 싱가포르의 랜드마크다. / 사진:위키피디아

인류 역사에서 자본주의 발달은 시장 규모를 끊임없이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초기 자본주의의 원형이 만들어진 곳은 중세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인 베네치아, 제노바, 피렌체 등이다. 이후 중심지는 보다 큰 영토를 가진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이동해 민족국가 형성과 함께 발전을 거듭했다. 그러다 20세기 들어 자본주의의 축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이라는 대륙 규모의 국가에 정착했다. 세계 자본주의의 메카로 발전한 미국은 새 천 년이 시작되면서 중국의 급부상으로 경쟁자를 두게 된다. 중국 역시 국토는 미국처럼 대륙적 규모이며 인구는 4배 이상 많은 대국이다.

싱가포르는 이와 같은 자본주의의 역사를 역행하는 듯하다. 인구 570만 명에 불과한 도시국가가 세계 자본주의의 빛나는 진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마치 중세 베네치아가 아시아 대륙으로 옮겨와 부활한 모습이다. 동남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싱가포르의 경제는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수준에 도달했다. 과거 베네치아가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지중해를 포섭하고 북해까지 진출했듯이 싱가포르 역시 동남아를 초월해 세계로 발전하는 전략을 보여 왔다.

베네치아와 싱가포르의 유사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베네치아가 육지와 바다 사이 석호(潟湖)의 질퍽한 지대 위에 인간의 줄기찬 노력으로 도시를 세웠듯이 싱가포르 또한 말레이 반도 끝 작은 섬 위에 인간 의지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1965년 싱가포르가 독립할 때 영토는 580㎢였지만 바다를 메워 면적을 720㎢까지 확장했다. 싱가포르의 랜드마크인 마리나베이 샌즈의 고층 건물과 골프장 등은 모두 바다를 메운 땅 위에 서 있다. 싱가포르는 2030년까지 추가로 56㎢를 더 확보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싱가포르는 현대 자본주의 시대에 처음으로 열대 지역에 등장한 선진국이다. 이런 점에서 21세기의 싱가포르는 중세 베네치아의 도시국가 모델을 재현하는 것은 물론 더운 기후에서 인류 최초로 풍요로운 삶의 시대를 열었던 고대 바빌로니아를 부활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챔피언

 

1인당 국민소득이라는 세계 경제 올림픽의 핵심 종목에서 싱가포르는 확실한 메달권이다. 국제통화기금이나 세계은행과 같은 기관의 통계에서 싱가포르는 산유국 카타르나 유럽의 소국 룩셈부르크 등과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1인당 소득 수준을 자랑한다. 2019년 현재 명목소득은 6만 달러를 넘어섰으며 구매력평가 기준(PPP)으로는 10만 달러 이상이다. 단순한 경제 소득을 넘어 국민의 생활 수준을 평가하는 유엔의 인간개발지수(HDI)에서도 싱가포르는 세계 8위다. 2018년 통계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이 주로 상위 랭킹 10개국에 포진하는 가운데 유일한 예외가 호주와 홍콩, 그리고 싱가포르다. 인간개발지수는 소득 수준에 더해 시민들의 기대 수명이나 교육 등 질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에 보다 정확한 생활 수준의 지표로 인식된다.

스위스 다보스포럼으로 잘 알려진 세계경제포럼은 2004년부터 세계경쟁력보고서(Global Competitiveness Report)를 통해 경제적 풍요를 창출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을 비교해 발표해 왔다. 여기서도 싱가포르는 지속적으로 상위권에 머물러 왔으며 2019년에는 1위를 차지했다. 유엔의 인간개발지수가 복지를 강조한다면 다보스의 경쟁력 랭킹은 제도나 정책, 사회적 기반 등을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국가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고 볼 수 있다.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측정하는 다양한 지수에서도 싱가포르는 세계 정상 수준이다. 대표적으로 미국 유수의 경제신문인 [월스트리트저널]과 보수 헤리티지 재단이 공동으로 개발한 경제자유지수(Index of Economic Freedom)에서 싱가포르는 2020년 1위를 차지했다.

경제자유지수를 구성하는 네 개의 중요한 요소는 법치국가, 정부 규모, 규제의 효율성, 시장의 개방성이다. 18세기 애덤 스미스가 제시한 자유주의 원칙에 따라 개인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을 때 공동체의 부가 효율적으로 축적될 수 있다는 시각을 반영한다. 싱가포르는 영국의 전통을 이어받아 독립된 사법부가 법을 집행하는 한편, 낮은 세금과 최소한의 규제로 자유로운 비즈니스 환경을 선사하며 국제적으로 활짝 열린 시장의 개방성을 자랑한다. 이상의 대표적 지수를 통해 싱가포르를 살펴보면 마치 이 도시국가가 신자유주의의 이상적 성공 사례인 것 같다.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는 일을 자제함으로써 기업의 창의력과 에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고, 따라서 나라의 부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불어난 것 같다.

게다가 싱가포르의 정치는 1965년 독립한 이후 보수적 권위주의 체제가 일관되게 지속되고 있다. 실제 싱가포르는 영국 식민지였던 1959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인민행동당(PAP, People’s Action Party)이 집권하고 있다. 국부 리콴유(李光耀)는 1991년 고촉동(吳作棟)에게 총리직을 넘겨줬지만, 2004년 리콴유의 아들 리셴룽(李顯龍)이 다시 총리를 맡아 구태의연한 권력의 세습을 실현했다. 싱가포르는 이처럼 정치적 권위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조합한 나라로 인식된다.

 

 

 

국부(國富)펀드의 원조

 

▎싱가포르의 국부로 여겨지는 리콴유. / 사진:위키피디아

싱가포르를 경제적 자유주의의 상징으로 보는 것은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싱가포르는 1819년 영국 동인도주식회사의 토머스 래플스(Thomas Raffles)가 세운 무역기지다. 당시 동남아 지역의 주요 항구였던 리아우나 바타비아 등과 경쟁하기 위해 싱가포르는 자유무역항으로 출범했다. 수출입과 관련된 관세를 없애고 법인세, 소득세 등을 최소한의 수준으로 유지함으로써 경쟁력을 확보한 것이다. 시장의 개방성을 앞세우는 전략은 1867년 싱가포르가 동인도주식회사에서 영국 식민성 산하로 넘어간 뒤에도 지속됐고, 1965년 독립 이후까지 한결같다. 싱가포르 정부의 경제개발원(Economic Development Board)은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독립 초기부터 추진했다. 독립 당시 진출해 있던 외국기업의 수는 165개에 불과했으나 1976년에는 3739개로 대폭 증가했다.

하지만 이 같은 시장 개방성 뒤에는 국가가 경제를 치밀하게 관리하고 국부를 직접 경영하는 패턴이 존재한다. 싱가포르의 사회학자 추아(蔡明發) 교수는 [자유주의를 거부한 싱가포르의 공동체주의와 국가자본주의]라는 저서에서 경제 운영에서 국가의 역할이야말로 이 나라의 특징임을 잘 보여주었다. 싱가포르 투자청인 GIC(Government of Singapore Investment Corporation)는 국부펀드의 원조격이다.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독립된 화폐를 운영하면서 국제 투기세력의 공격으로부터 화폐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많은 액수의 외환보유고가 필요했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외환보유고를 묻어두고 놀게 하는 것보다 생산적인 투자가 낫다’는 계산에 1981년 GIC라는 국부펀드를 출범시켰다. 외환보유고를 활용해 세계 경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전략을 펴기 시작한 것이다. GIC는 4400억 달러 규모의 엄청난 자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지만 정확한 규모는 국가 기밀에 속한다. 싱가포르 달러에 대한 투기를 막기 위해 외환보유고 수준을 투기 세력이 알도록 방치하지 않겠다는 논리다.

GIC가 싱가포르의 외환보유고를 관리하는 중앙은행의 투자기관이라면 테마섹(Temasek)은 정부의 전략적 투자를 총괄하는 공공 부문의 뇌라고 할 수 있다. 싱가포르는 독립 이후 외국 자본에 시장을 개방하되 전략적 부문에서는 정부의 공기업이 나서서 직접 경제를 운영했다. 전력(Sembcorp Power)이나 통신(Singtel), 항공(Singapore Airlines)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테마섹의 자산 규모는 2000억 달러를 넘는다.

싱가포르 국가 자본주의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테마섹이라는 지주회사를 통해 다양한 공기업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 전략적으로 운영한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총괄적 조정 없이 여러 공기업이 정부의 다양한 부처에 분산돼 나타나는 혼란을 피할 수 있다. 둘째는 공기업들이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도록 장려한다는 점이다. 싱가포르 전력회사는 가까운 인도나 베트남뿐 아니라 멀리 중국이나 UAE까지 사업의 영역을 확장했고, 통신공사 또한 호주나 인도 시장의 주요 공급자로 부상했다. 세계를 향해 가장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굳히면서도 동시에 국가가 뒤에서 모든 것을 조정하는 나라가 바로 싱가포르다. 한국이나 일본의 자본주의가 재벌을 낳았다면 싱가포르는 국가가 세계시장을 무대로 활동하는 국부펀드 자본주의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집 걱정없는 주택 사회주의

 

▎1970년대 만들어진 부킷바톡 지역 공공주택촌. / 사진:위키피디아

신자유주의 챔피언 싱가포르의 이미지에서 가장 대립각을 형성하는 분야가 바로 주택이다. 싱가포르는 국가가 주택을 지어 저렴한 가격에 국민에게 제공하는 주택 사회주의의 나라다. 싱가포르의 국민이라면 80% 이상이 정부의 주택개발공사(HDB, Housing Development Board)가 분양한 아파트에 거주한다. 이들 가운데 80% 이상이 99년 임대권이라는 안정적인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 협소한 섬의 국토에 수백만 명의 국민에게 안정적 주택을 제공하는 것은 식민 시대부터 지속된 정부의 중요한 의무였다. 1960년대 초 설립된 주택개발공사는 시작은 대형 화재로 인한 이재민에게 작은 임시 주택을 제공하는 사업으로 출범했지만, 점차 전 국민을 위한 주택 복지 해결사로 성장했다. 이미 1980년대 중반이 되면 전 국민의 90% 이상에게 주택을 제공하는 보금자리 관리자가 됐다.

이 과정에서 제일 어려웠던 문제는 주택개발을 위한 토지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인민행동당이 지배하는 싱가포르의 강한 정부는 주택문제를 국가 안정을 위한 최우선 선결과제로 인식하고 토지 수용을 밀어붙였다. 최소한의 보상만으 강력하게 토지 국유화를 추진하여 공공 주택 건설 정책을 뒷받침했다. 또 다른 관문은 국민이 주택을 구매할 수 있도록 재정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싱가포르는 1955년부터 연금을 관리하는 중앙저축기금(CPF, Central Provident Fund)에 전 국민이 가입하도록 의무화했다. 정부는 시민이 공공주택을 분양받으면 이 기금에서 할부금을 지불하도록 함으로써 내수 소비를 줄이지 않고도 주택 보급을 추진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다.

주택건설과 분양을 국가가 담당하는 만큼 1가구 1주택의 원칙을 세웠다. 일단 분양을 받은 사람은 5년 동안 거주한 다음에야 아파트를 시장에 내놓고 판매할 수 있다. 또 한 사람이 2채의 공공주택을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싱가포르의 경제 발전과 이민 인구의 유입으로 주택 가격이 상승하면서 공공주택을 분양받은 사람은 더 비싸게 시장에 내다 팔아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싱가포르는 이처럼 주택 사회주의를 실천하는 신자유주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싱가포르에서 결혼을 위한 프러포즈 멘트는 “HDB 아파트 신청하러 갈까”라고 한다. 이렇듯 매우 비슷한 고층 아파트에 국민의 대다수가 생활하는 싱가포르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원칙을 실용적으로 혼합한 삶의 방식을 성공적으로 만들었다. 어떤 면에서 사회주의적 주택 정책은 사람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자본주의적 개방성을 수용하도록 하는 셈이다. 경제체제 뿐 아니라 동서양의 사고도 골고루 취사선택해 노부모와 동거하는 세대는 더 넓은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는 우선권을 제공한다. 서구 자유주의 원칙의 출발점은 개인인데 비해 아시아에서 공동체주의의 기본 단위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1991년 국부 리콴유로부터 총리직을 물려받은 고촉동은 전임자 리콴유를 현대의 공자라고 찬양했다. 이러한 찬사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修辭)일 수도 있지만 싱가포르의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리콴유는 식민지 시절인 1954년 인민행동당을 창립한 이후 1959년 식민지 자치를 위한 총선에서 승리를 거둬 총리로 부임했다. 1963년에는 말레이시아 연방의 일원으로 독립을 주도했다가, 1965년 싱가포르를 연방에서 떼어내 도시국가로 출범시킨 싱가포르의 아버지다.

인민행동당은 1965년부터 독립국 싱가포르를 지속적으로 통치해 왔다. 정권교체 없이 한 정당이 반세기 넘게 권력을 독점했다는 점에서 싱가포르는 독재에 가깝다. 인민행동당은 매번 선거에서 최소 6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국민의 지지를 확실하게 받고 있다. 물론 여당은 60% 정도의 지지율로 의석을 거의 독점함으로써 선거는 국민의 의견을 대표하는 자유 민주주의의 과정이라기보다는 정부의 신임을 묻는 투표의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정부는 의회 장악과는 별개로 득표율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곤 한다.

 

 

 

‘현대판 공자’ 리콴유가 이끈 ‘민주적 독재

 

▎싱가포르 식물원. 도시국가의 오아시스 역할을 담당한다. / 사진:위키피디아

1983년 리콴유 총리는 우생학적 사고를 반영한 ‘대졸 엄마’ 정책을 폈다.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의 출산을 장려하는 한편 학력이 낮은 여성은 단산(斷産)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었다. 싱가포르 국민은 이 불평등 정책에 크게 반발했고 인민행동당 득표율은 77%에서 64.8%로 추락했다. 인민행동당은 의회 79석 중 77석을 차지했지만 ‘대졸 엄마’ 우생 정책은 포기했다. 2020년 치러진 선거에서도 인민행동당은 지지율이 2015년의 70%에서 61%로 하락해 긴장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의회 93석 가운데 83석을 차지했는데도 말이다. 그만큼 정부는 국민의 절대적 신뢰를 유지한다는 목표를 추구하면서 지지율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이 밖에도 싱가포르는 유교 전통의 과거(科擧) 제도처럼 뛰어난 능력을 갖춘 엘리트를 선발해 공직으로 유도한다. 대입 이전부터 우수 인재를 선발해 세계 명문대학에 국비로 유학시킨 뒤 정부와 군의 간부로 채용해 신속한 출세 가도를 달리게 한다. 싱가포르의 공직자는 민간에서 벌 수 있는 만큼의 고소득을 보장받는 대신 부패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로 평가받는다. 공익을 위해 전념하는 청렴한 관리의 모델을 이상으로 삼는 것이다.

물론 유교적 요소를 가미한다고 싱가포르의 독재적 성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를 비판하는 야당 인사는 명예훼손 소송을 통해 경제적 파산 상태로 만들어 정상적인 삶을 파괴해 버린다. 그 결과 싱가포르에서 버티지 못하고 해외로 망명해 버리는 사례가 빈번하다. 노동조합은 정부의 통제 아래 놓여있으며, 언론 또한 정부가 하나의 공기업으로 묶어 운영하고 있다. 다만 국민은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 때마다 국민은 여당에 60% 이상의 지지를 보내고 있다. 싱가포르를 ‘민주적 독재’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서라면 개개인의 기본권을 무시해도 좋다는 다수의 의지를 반영한다는 뜻이다. 자유를 무시하는 민주주의가 빠질 수 있는 위험한 함정이다.

싱가포르 주변 말레이 반도와 제도가 이슬람이 지배하는 녹색 바다라면 중국계 이민자들의 나라 싱가포르는 붉은 점에 해당한다. 녹색이 이슬람의 색이라면 붉은색은 중국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인구 3200만 명과 인도네시아의 2억6700만을 더하면 3억 명에 가깝지만, 싱가포르는 570만 명 정도에 불과하니 바다의 점 하나라는 비유가 과장된 것은 아니다. 국가 규모의 차이뿐 아니라 문화나 종교적 이질성으로 인해 싱가포르는 항상 존재 자체가 위협에 노출돼 있었다.

적대적 환경에서 생존하려면 국민의 단합이 필수적이다. 이런 환경은 싱가포르의 민주적 독재라는 현실을 어느 정도 설명한다. 아랍 국가들에 둘러싸인 이스라엘처럼 싱가포르도 국방이 최우선이다. 국내총생산의 3% 이상을 국방에 투자하는 싱가포르는 2년의 국민 징병제를 실시하는 나라다. 영토가 워낙 좁다 보니 군사 훈련은 대만이나 보르네오 섬 등 해외에 나가서 실시해야 할 정도다.

 

 

 

‘녹색 바다에 붉은 점’

 

▎영어, 중국어, 타밀어 말레이어 등 4개 공식 언어가 등장하는 싱가포르의 표지판. / 사진:위키피디아

싱가포르는 인구가 적은 도시국가지만 구성은 다양하다. 크게 보면 중국계가 75%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는 말레이계가 13%, 그리고 인도계가 9% 정도다. 싱가포르만 따지면 중국계 나라지만 주변 녹색 바다를 고려하면 말레이계의 세상이라는 뜻이다. 다수인 중국계가 소수인 말레이계를 무시할 수 없는 구조라 말레이계 청년은 병역도 면제받을 정도다. 인도계는 ‘중국 vs 말레이’라는 대립 구도를 완화해주는 완충재 역할을 담당한다.

싱가포르는 생존을 위해 중국계의 나라가 아닌 다인종(multiracial) 국가를 선포했다. 실제 중국, 말레이, 인도 등 각 인종집단의 대표성을 인정하면서 상호존중의 평화적 공존을 추구해 왔다. 예를 들어 국가가 분양하는 공공주택 정책에서 구역마다 여러 인종의 쿼터제를 운용함으로써 공존을 장려했다. 인종별 게토(ghetto)가 형성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책이다. 중국에서 갓 이민 온 사람들이 이웃 인도계 가정의 카레 냄새로 힘들다는 불만을 토로하자 싱가포르 사회는 오히려 ‘모두 카레 먹는 날’(share-a-curry day)을 정해 다인종사회의 공존 에티켓을 내세웠다.

싱가포르의 다인종주의는 국어의 선택에서도 드러난다. 다수결로 언어를 선택한다면 중국의 언어, 특히 이민자 대부분의 고향인 광동이나 복건 지역의 언어를 국어로 골랐어야 한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식민제국의 언어인 영어를 공용어로 선택했다. 초·중등과정에서 학생들은 주로 제1언어인 영어로 교육을 받으며 중국어, 말레이어, 인도어 등 제2의언어 교육도 겸해서 받는다. 여기서 중국어란 일상에서 싱가포르 화교들이 사용하는 남방 방언이 아니라 보통화(普通話, 표준 중국어)를 뜻하며, 인도의 경우 남부의 타밀어를 의미한다.

결국 싱가포르의 아이들은 학교에 가면 집에서 사용하는 모어로 교육받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영어로 교육을 받는다는 뜻이다. 인도도 다수의 지방언어가 경쟁하는 상황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선택했다는 점은 싱가포르와 유사하다. 하지만 싱가포르의 교육 수준은 세계 최고다. 그 결과 싱가포르 시민들은 아시아에서 영어를 가장 잘하는 민족으로 부상했고 영어는 싱가포르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등장했다. 영어와 북경식 중국어에 능통한 싱가포르 청년층이 중국 남방 방언만 할 줄 아는 조부모와 소통이 어려울 정도다.

싱가포르는 인류에 희망을 제시하는 부국의 성공 모델로 등장했다.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대영제국의 식민지에 불과했지만, 경제발전과 삶의 질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혜성처럼 떠올랐다. 미국이나 일본 등 인구 규모가 거대한 나라만 성공하는 줄 알았는데 싱가포르는 손톱만 한 섬에서도 세계 자본주의의 빛나는 별로 부상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일반적으로 도시란 주변 지역의 영양소를 집중적으로 흡수하여 성장하곤 했지만, 싱가포르는 주변을 넘어 세계의 영양소를 끌어당겨 꽃피운 사례다.

 

 

 

싱가포르 모델과 중국의 미래

 

싱가포르는 무엇보다 국제적 선진 도시의 모델이다. 도시 개발을 위해 세계가 싱가포르를 주목하는 이유다. 싱가포르의 주롱 인터내셔널은 2008년 현재 37개국 139개 도시에서 1000여 개의 도시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었다. 대만의 타이상(臺商)이 중국에서 쿤샨 산업단지를 개발했듯이 싱가포르는 중국과 합작하여 장쑤성 쑤저우 산업단지를 개발했다. 중국은 또 싱가포르의 공공주택 정책을 모방하기도 했는데 시민에게 저렴한 주택을 제공하기보다는 사업가들의 자금 지원 형식으로 변형됐다. 먼 남미 브라질의 상파울루 시에서도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해 싱가푸라(Cingapura)라는 빈민촌 재개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발전을 이룩한 싱가포르는 동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시간대에 위치하고 있어 금융 허브로도 성장할 수 있었다. 동아시아의 도쿄나 홍콩 시장을 유럽의 프랑크푸르트와 런던 시장에 연결해 주는 역할을 담당해 온 것이다. 최근 중국의 홍콩에 대한 통제 강화는 싱가포르가 국제 금융 허브로 도약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싱가포르 경제모델의 또 다른 장점은 금융의 발전과 함께 제조업도 상당 부분 유지했다는 사실이다. 홍콩 경제에서 제조업 비중이 1% 이하로 떨어진 것과 비교했을 때 싱가포르는 여전히 국내총생산의 19%, 즉 1/5을 제조업이 담당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싱가포르의 정치 모델은 많은 독재자에게 매혹적인 이상형이다. 인민행동당이라는 하나의 정당이 독립 이후 55년간, 그리고 식민시기까지 포함한다면 62년간 권력을 독점해 왔기 때문이다. 이 긴 기간을 리콴유, 고촉동, 리셴룽이라는 단 3인의 통치자가 안정적인 정책을 추진했으며 리셴룽은 심지어 리콴유의 아들이니 말이다. 공산당 독재의 중국은 특히 싱가포르 모델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독재 정치와 경제 발전 사이의 핵심 인과관계를 착각해선 곤란하다. 싱가포르 경제 발전이 인민행동당의 독재 덕분이라기보다는 지속적인 경제 성과가 오랜 세월 일당 독재를 가능하게 만든 동력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게다가 300배에 가까운 인구를 가진 중국이 싱가포르와 같은 모델을 실현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또한 도시국가의 규모에서나 실현 가능한 엘리트의 철권통치와 청렴성 유지, 시민의 일관된 지지를 대륙 규모의 중국에서 재현하는 것은 기적에 가까울 것이다.

 


※ 조홍식 – 1989년 프랑스 파리 정치대학(Sciences Po)을 졸업하고, 1993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유럽통합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베이징외국어대, 팡테옹-소르본대 등에서 객원 연구원 및 교수를 역임했고, 2006년부터 숭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경제와 유럽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근저로는 [문명의 그물: 유럽문화의 파노라마]와 [파리의 열두 풍경] 등이 있다.

 

 

(원문보기 링크: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3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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