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식의 세계속으로] 거리두기, 인류 공동의 추억과 숙제
코로나로 인류 3분의 1이 봉쇄,격리 / 우리가 잊고 지내던 함께함의 소중함
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을 안아줌으로써 마음의 따스함을 공유하는 프리 허그 운동이 유행한 적이 있다. 우리는 미소를 교환하거나 악수를 하면서 예의를 차리지만 다른 사람을 끌어안으면 체온과 호흡을 느끼며 한순간이나마 한 몸이 된 기쁨을 간직할 수 있다. 어쩌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포옹에서 느끼는 위안은 본능적인 감정일 것이다.
이번 세계적 코로나 위기에서 가장 슬픈 뉴스 가운데 하나는 유럽의 지중해 지역이 전염병이 창궐하는 중심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프랑스 등이 유럽에서 가장 심각한 질병의 피해 지역이 되는데 여기에 문화적 요인들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듯하다. 대가족과 친구를 자주 만나 따듯한 관계를 유지하고, 포옹이나 볼 키스 같은 친밀감을 표현하는 습관이 병의 확산에 기여한 것이다. 반면 세계에서 1인 가구 비중이 제일 높은 개인주의의 북유럽, 사람들의 관계가 냉정하기로 유명한 스칸디나비아는 상대적으로 전염병의 심각성이 덜한 편이다.
유럽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는 요즘 질병 전문가들이 주문하는 가장 기초적인 코로나 대응법이다. 거리두기란 사람들의 직접 접촉을 금지하라는 명령이다. 따라서 유럽과 미국, 인도 등 많은 지역은 주민의 외출 자체를 금지하는 강력한 조치를 시행 중이다. 4월 현재 인류의 3분의 1 정도가 봉쇄 및 격리 상황이라고 한다. 나머지 사람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거리두기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이번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 경험은 어쩌면 인류가 예외 없이 공유하는 첫 번째 공동의 추억일지도 모른다. 바이러스는 국적이나 인종, 종교나 계급을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침투하여 공격한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나 서로를 멀리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놓인 셈이다. 코로나가 인류의 일상을 뿌리부터 바꿔놓은 이유다.
부유한 뉴욕과 빈곤한 뭄바이의 일터와 학교는 똑같이 문을 닫았다. 경제 강대국 미국에서 일자리를 잃고 실업수당을 신청한 사람이 보름 만에 1000만명 수준이다. 프랑스는 올해 대입 자격증인 바칼로레아 시험을 치르지 못하게 되었고 한국도 학교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신입생이 가득하다. 코로나에 특별히 취약한 계층인 노인들은 사랑하는 자식과 손자도 보기 어려워졌다.
이처럼 어려운 때 기댈 곳이란 신앙이다. 하지만 로마의 교황청이나 이슬람 메카 모두 문을 걸어 잠그고 순례자를 받지 않는다.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지만 모든 행사는 마음으로 치를 수밖에 없다. 종교 생활로 삶의 고달픔을 달래던 수많은 사람들이 갈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된 것이다. 모임으로써 하나 되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습관도 다 금지의 대상이다. 세계인이 열광하는 유로 축구대회는 물론 인류의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도 취소되었다. 꽃은 화사하게 피어올라 봄이 눈에 띄지만 벚꽃놀이의 흥조차 나눌 수 없는 삭막한 봄이다.
거리두기는 그나마 우리가 잊고 지내던 함께함의 소중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얼굴 맞대고 어깨를 부대끼는 삶이 얼마나 그리운가. 코로나가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꾸어 놓으며 공동의 추억을 남겼듯이, 이를 극복하는 일도 상부상조와 협력으로 풀어야 하는 인류 공동의 숙제일 것이다. 거리두기가 장벽 쌓기로 이어지는 사고(事故)를 경계하면서 말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