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1.14)
프랑스가 연금 개혁을 둘러싸고 한 달이 넘게 전국 마비 상태다. 철도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이 간헐적으로만 운영되고 있으며 정부의 개혁에 반대하는 시위가 강렬하게 지속되는 중이다. 작년 이맘때쯤에도 엠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노란 조끼’ 운동으로 홍역을 겪었지만 봄이 오면서 다시 지지율을 확보하는데 성공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연금 개혁 사태는 훨씬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노란 조끼’ 운동은 유류세 인상이라는 단발성 조치에 대한 즉흥적 저항이었지만 연금 개혁은 프랑스 전 국민의 노후 삶의 틀을 결정하는 일이다. 따라서 사회의 척추를 형성하는 노동과 사회 세력이 조직적으로 동원되어 정부와 힘겨루기에 나서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지난 30여 년 동안 좌·우파를 막론하고 프랑스 정부는 여러 차례 연금 개혁을 시도했지만 매번 여론과 사회 세력의 반대로 실패한 경험이 있다.
프랑스에서 연금 제도를 고치는 일이 유별나게 힘든 이유는 많다. 우선 프랑스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 시민사회가 강력하게 견제하고 반발하는 전통이 깊이 뿌리내린 나라다. 게다가 프랑스의 연금 제도는 개인이 부담한 돈을 모았다 돌려주는 방식이 아니라 일하는 세대의 돈을 거둬 은퇴한 노인 세대에게 지급하는 ‘세대 간 연대’의 방식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연금 제도를 만들 때 당시 노인들에게 곧바로 상당한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고안해 낸 방식이다.
이 제도 덕분에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연금 운영 초기에 은퇴한 노인들은 자신은 별로 기여한 바가 없더라도 높은 액수의 연금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프랑스의 평균 수명은 제도 초기의 60대에서 점차 80대(현재 남성 80세, 여성 86세)까지 늘어나 대개 25년 정도 높은 연금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21세기 프랑스는 노인을 위한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이 많은 돈을 부담하는 것은 20대부터 60세 정도까지 일하는 청·장·중년 계층이다. 특히 청년 세대는 일자리가 적어 실업률이 높은 데다, 일을 하더라도 높은 연금 부담을 지기 때문에 불만이 높을 수밖에 없다.
프랑스에서 연금 개혁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세대 간 연대를 넘어 세대 내에서도 연대의 원칙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부자가 빈자보다 평균 수명이 길다. 평생을 탄광에서 일한 광부가 대기업 간부만큼 오래 살기는 어렵다. 이처럼 직종 별 수명의 차이는 7년 정도까지 벌어진다고 한다. 가난하게 산 것도 억울한데 일찍 죽어 연금 혜택도 보지 못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일반적이고 따라서 연금 차원의 소득 재분배를 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
이런 복잡한 방정식을 하나의 전국적 제도로 통합하려는 마크롱 정부의 시도는 당연히 난제일 수밖에 없다. 현재 평균 62세의 은퇴 연령을 64세로까지 연장하려 하는데 사람들은 당연히 저항하고 있다. 기존의 관대한 제도로부터 후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 직업군마다 자신의 특수성을 내세워 예외와 특혜를 누리려고 강력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경찰이나 소방대원은 위험한 업무이며, 철도나 지하철 운전은 스트레스가 높으며, 국립오페라단의 무용수는 60대까지 활동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연금 개혁의 가장 큰 장애물은 집단 이기주의와 기득권 세력의 고집이며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고민과 양보의 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