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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식의 세계속으로] 암바조니아와 홍콩의 닮은 꼴(11/25)

    • 등록일
      2019-11-27
    • 조회수
      383

[조홍식의세계속으로] 암바조니아와 홍콩의 닮은 꼴

베르사유 조약, 카메룬 내전까지 영향 / 독재의 소수 탄압은 결국 분리주의 초래

올해는 제1차 세계대전을 종결하는 베르사유 조약의 100주년이다. 세계라는 이름의 첫 전쟁인 만큼 그 여파는 광범위해서 현재 중앙아프리카의 카메룬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내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100년 전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령 카메룬을 영국과 프랑스로 나누어 주었는데, 영어권과 프랑스어권의 대립으로 2016년 이후 수천 명이 사망하고, 50만명 이상의 피난민을 낳은 내전이 발생한 것이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처럼 카메룬도 유럽 세력이 그어 놓은 인위적인 경계의 국가다. 카메룬은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뒤늦게 식민지 경쟁에 뛰어든 독일이 1884년 중앙아프리카에 차지한 영토다. 스페인의 적도기니나 프랑스의 가봉, 영국의 나이지리아 등 카메룬 주변에는 유럽 세력에 따라 식민지들이 만들어졌다. 독일 제국이 세계대전에서 패망함에 따라 영국과 프랑스는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카메룬을 양분해 신탁통치를 하게 됐다.

1919년부터 1960년까지 나이지리아에 가까운 지역은 영국이 차지했고, 가봉에 가까운 지역은 프랑스 몫이 됐다. 독일어를 강요받았던 카메룬 사람들은 이제 다시 영어나 프랑스어 학교에 다니면서 새로운 식민언어를 배워야 했다. 그리고 1960년 아프리카의 탈(脫)식민 과정에서 영국령 카메룬은 같은 언어의 나이지리아와 프랑스어의 카메룬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1961년 주민투표를 통해 북부는 나이지리아를 선택했고, 남부는 카메룬을 택했다.

카메룬의 비야 독재가 이처럼 오랜 기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아프리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대국의 비호 덕분이다. 프랑스, 영국, 미국, 중국 등은 비야의 카메룬이 혼란스러운 아프리카의 안정적 축이라고 판단해 독재를 눈감아 주면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오래 지속되는 강압적 독재도 영원하지는 않다. 2017년 카메룬의 영어권 지역은 암바조니아라는 독립 국가를 선포하고 만 것이다. 지난달 비야 정권은 정부가 고른 영어권 지역 대표들과 형식적인 ‘국민대화’를 가지며 화합을 강조했지만 이들이 요구하는 연방제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그리고 카메룬의 내전은 세계의 무관심 속에서 계속 진행 중이다.

최근 세계 언론의 초점이 되고 있는 홍콩 사태와 카메룬의 내전은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비극적 역사가 문제의 발단이지만, 이 비극을 교묘하게 활용하는 독재 정권이 소수를 탄압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민족감정을 선동해 소수의 자율성을 짓누르는 공식이 두 곳에서 모두 작동 중이다. 중국이나 카메룬 모두 다수의 민족주의를 소수에 강요하려는 독재의 탄압은 결국 홍콩과 암바조니아라는 소수의 강렬한 분리주의 반응을 초래한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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