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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식의 세계속으로] 문화는 강하지만 동시에 변하는 것(10/7)

    • 등록일
      2019-10-14
    • 조회수
      352

‘나체주의’ 관습 독일만의 민족문화 / 하나 된 유럽서도 ‘사고의 차이’ 여전

10월 3일 한국의 개천절은 독일의 통일 기념일이기도 하다. 1990년 다시 한 나라가 돼 30여 년이 지났지만 과거 동독 지역은 경제적으로 여전히 낙후된 곳이며 그 때문에 극우 정치세력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역이다. 이처럼 동·서독의 차이가 지속되고 있지만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일만의 민족 문화도 존재한다. 예컨대 나체로 사람들이 어울리는 관습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도 공중목욕탕이나 사우나에서 사람들이 나체로 어울린다는 점에서 독일과 유사한 점이 있다. 하지만 독일의 경우에는 남녀 혼용의 수영장, 목욕탕, 나체 해변이나 호숫가 등이 일상적이다. 1990년대 유학 시절 이런 혼용 스포츠센터를 경험한 적이 있는데 성별이 다른 사람들이 나체로 어울려도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그리 어색하지는 않았다. 이런 전통은 유럽에서도 특수한 독일만의 문화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가까운 이웃 프랑스는 극소수의 나체주의자들이 있지만 독일처럼 일반인들에게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독일인과 결혼한 프랑스 사람들은 시부모나 처부모와 함께 사우나에 가는 일을 가장 어색해한다. 그러나 독일의 문화 속으로 들어가 경험해보면 어색함이 점차 자연스러운 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나체주의가 만들어진 것은 20세기 초 산업사회의 물질문명과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경험을 극복하기 위한 운동이었다. ‘자유로운 신체 문화’라는 슬로건을 중심으로 태양을 온 몸으로 받는 일광욕과 알몸으로 수영하며 자연을 느끼자는 사회운동이었던 것이다. 이런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호숫가 누드 비치가 최초로 정부 인가를 받은 것이 1921년이니 100년 정도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나체주의가 추구하는 목표는 몸의 자유만이 아니라 인간 사이의 평등이다. 사람은 옷을 입음으로써 계급이 드러나고 지위를 뽐내곤 하는데 발가벗은 상태에서는 모두가 평등해지기 때문이다. 대개 나체하면 성적인 상상을 하곤 하지만 실제 옷을 한 올도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성적 매력은 오히려 사라지고 평등한 자연의 몸이 드러난다는 주장이다.

독일의 나체 운동이 얼마나 강했는지 나치즘이나 공산 정권조차 이를 없애는데 실패했다. 동독 정부는 초기에 나체촌을 제거하려 했지만 사람들이 강력하게 반발하자 방향을 틀어 오히려 자본주의 문명을 부정하는 공산정권이 주는 특혜로 포장하기까지 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당시 동베를린 한 연구소에서 일하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매주 즐기던 사우나를 하고 나서야 서베를린으로 자유를 느끼러 구경을 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처럼 문화는 신비로운 현상이다. 세계화로 인류가 모두 비슷한 삶의 양식을 가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고의 차이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유럽이 하나가 돼 파리에서 베를린까지 국경 검색도 없이 이동하지만 프랑스와 독일의 문화 습관은 크게 다르다. 유럽연합(EU) 28개국에서 영국만이 굳이 탈퇴를 하겠다는 주장도 문화적 배경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문화적 차이를 뛰어넘을 수 없는 민족 본질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 나체운동 역사에서 보듯 나체주의가 형성된 것은 100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문화는 강하지만 동시에 변하는 성격을 갖는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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