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식의 세계속으로] 국경 없앤 스페인과 포르투갈 (7/29)
양국, 왕실 계승 등 싸고 700여년간 대립 / EU 가입 후 ‘정치적 선’ 없애 우호관계로
요즘 민족이 뜨거운 화두다. 다른 민족이 서로 세차게 대립하는 것은 물론 같은 민족 안에서도 돌팔매질이 치열하다. 이럴 때일수록 거리를 두고 호흡을 가다듬는 여유가 필요하다. 유럽은 면적은 작지만 민족의 수와 갈등은 어느 대륙 못지않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그 가운데 매우 흥미로운 사례다.
유럽 지도를 놓고 보면 한 덩어리의 이베리아반도가 굳이 두 나라가 될 이유를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알프스가 이탈리아반도를 지리적으로 독립시켜 놓았듯이 알프스만큼 높고 험한 피레네산맥은 이베리아반도를 유럽 대륙으로부터 갈라놓았다. 하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에는 둘을 나누는 산맥이나 강도 없다. 오히려 두에로·도루, 타호·테조 등 많은 강은 스페인에서 시작해 포르투갈을 통해 대서양으로 들어간다. 두 나라의 국경은 무척 인위적이고 정치적인 선이다.
언어를 보더라도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는 같은 라틴어가 지역에 따라 조금 다르게 진화한 결과다. 우리가 스페인어라고 부르는 언어는 사실 이베리아반도 중앙의 카스티야 방언이다. 많은 나라가 그렇듯 스페인도 수도 마드리드 지역의 언어가 표준어가 된 것이다. 따라서 포르투갈어는 안달루시아어나 카탈루냐어 등 스페인 내부의 지역 사투리 가운데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스페인어와 가까운 말이다.
포르투갈이란 나라의 기원은 12세기 포르투 지역의 백작이 왕을 자칭하면서부터다. 당시 이베리아반도는 남부에 아랍인들의 이슬람 제국이 있었고, 북부에는 갈리시아,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 등 다수의 왕국이나 봉건 영주들이 경쟁하는 구도였다. 이들 기독교 제후들은 서로 복잡한 혼인 관계로 얽혀 있었기 때문에 통합과 분열의 기회는 많았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왕실의 통합은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의 페르난도 왕의 결혼으로 15세기 스페인이 탄생한 일이다. 덜 알려진 사실은 당시 카스티야의 엔리케 4세가 사망했을 때 왕위를 둘러싸고 1475년부터 1479년까지 왕의 이복 여동생 이사벨과 딸 호안나의 내전이 벌어졌었다는 점이다. 당시 호안나는 외삼촌인 포르투갈의 아폰주 5세와 결혼한 상태였다. 결국 카스티야 왕위 계승 전쟁은 이베리아반도를 놓고 벌인 페르난도의 아라곤과 아폰주의 포르투갈 대결이었던 셈이다.
1581년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포르투갈 왕위를 계승하면서 이베리아반도가 하나로 통합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1640년 포르투갈은 다시 자신만의 왕을 옹립하였고, 독립을 되찾기 위해 수십 년간 스페인과 전쟁을 벌였다. 17세기 이후 포르투갈이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영국이 스페인을 견제하기 위해 포르투갈을 꾸준히 지원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난 1000년 동안 이베리아반도의 역사를 지배한 것은 왕실의 혼사와 혼외정사, 왕족의 건강과 수명, 왕위 계승을 둘러싼 파벌 싸움과 국제정세 등이다.
1297년 알카니세스 조약을 통해 만들어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경계는 유럽에서 가장 오랜 국경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두 나라는 1986년 유럽에 동시 가입하였고, 1995년에는 솅겐 조약의 발효로 국경을 없앴다. 700년 지속된 피비린내 나는 인위적 경계를 9년 만에 없애고 사람도 새처럼 자유롭게 넘나드는, 지도에만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으로 만든 것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