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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신문] 2019년 유럽, 안배(按配)의 정치(7/15)

    • 등록일
      2019-07-16
    • 조회수
      372

2019년 유럽, 안배(按配)의 정치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를 마치고 이제 향후 몇 년 동안 유럽연합(EU)을 이끌어 갈 지도자들의 진용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유럽은 회원국만 28개국에다 모두 다원주의 민주제도를 운영하기 때문에 정치세력도 극우부터 극좌까지 각양각색이다. 이런 복잡한 환경에서 정치 리더십을 구성하는 일은 고차원 방정식일 수밖에 없다. EU 지도부 구성은 다양한 세력을 골고루 안배하는 타협의 정치이자 균형의 예술이다.
유로를 관리하는 유럽중앙은행(ECB)장은 유럽을 넘어 세계 정치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 가운데 하나다. 게다가 일단 임명되면 8년의 긴 임기와 독립성이 보장된다. 이번에 이 자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로 활동하는 프랑스 여성 크리스틴 라가르드가 차지하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라가르드가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 출신으로 중앙은행 경험이 없다고 비판했지만, 프랑스 재정장관이나 IMF 총재를 거치면서 국제경제 문제의 경험을 충분히 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라가르드는 이제 미국 재닛 옐런에 이어 세계통화계의 두 번째 여제로 등극한 셈이다.
유럽집행위원회를 총괄하는 임기 5년의 위원장에는 독일 국방장관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이란 또 다른 여성이 임명되어 오는 16일 유럽의회 비준을 받을 예정이다. 앙겔라 메르켈이 독일 총리로 재임하는 장기간 내내 가족·노동·국방 등 다양한 장관직을 맡아 행정경험이 화려한 기독교민주당 정치인이다. 게다가 폰데어라이엔은 유럽의 수도로 통하는 브뤼셀에서 태어나 열세 살까지 살았다. 아버지가 젊을 때 유럽 집행위원회 관료로 근무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약점은 국내정치에서 인기가 없고 자국인 독일의 사민당과 녹색당이 반대 캠페인을 벌인다는 점이지만, 유럽 정상들이 어렵게 도달한 취약한 균형을 의회가 비준과정에서 깰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유럽 파워의 쌍두마차인 중앙은행과 집행위원회를 라가르드폰데어라이엔 여성 티켓이 차지한 것은 이번 진용의 큰 장점이다. 유럽 안배의 정치에서는 대국과 소국의 균형이 중요한데 프랑스와 독일이라는 대국 둘이 큰 자리를 꿰찬 형국이다. 둘 다 여성이라는 진보적 이미지로 대국의 권력 독점을 포장한 모습이다. 그렇다고 소국을 완전히 소외시킬 수는 없기에 임기 2년 반의 유럽이사회 의장은 벨기에 총리 샤를 미셸을 내세웠다. 그는 유럽정치의 자유주의 몫을 대표하며 40대 정치인의 젊은 피를 상징한다. 의장의 역할은 유럽 정상회의를 준비하고 주재하는 것이기에 실제 권력은 중앙은행이나 집행위에 비하면 약하다.
유럽 파워의 빅4라면 마지막으로 꼽히는 자리가 외교안보 고위대표직이다. EU의 외무장관에 해당하는데 이 자리에는 스페인의 외상인 호셉 보렐이 임명되었다. 스페인은 남유럽을 대표하며 보렐은 사회주의 계열이다. 기민주의의 반데어라이엔, 자유주의의 미셸, 보수주의의 라가르드와 균형을 맞추기 위한 중도 좌파 대표란 말이다. 4만 보면 우측으로 기울어 보이지만, 이번 달 초 유럽의회 의장으로 사회주의 진영의 이탈리아 민주당 다비드 사솔리가 당선된 사실을 감안하면 좌우 균형을 이룬다.
이번 고차원 방정식에서 빠지거나 소외된 세력도 존재한다. 벨기에를 제외하면 소국이 적고 대국 중심으로 엮은 진용이다. 지리적으로 남북의 균형은 어느 정도 맞지만 동서는 완전히 서유럽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동유럽은 협상의 과정에서 프란스 팀머만스 네덜란드 사회주의자가 집행위원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힘을 합쳐 큰 목소리를 냈다. 동유럽의 주자를 내세우는 데는 실패했지만 반대하는 후보를 떨어뜨리는데 영향력을 소진한 것이다. 지리적으로 스칸디나비아의 북유럽도 소외되었고, 정치세력 가운데는 선거에서 선전한 녹색당도 자리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 집행위원을 정하고 담당 분야를 할당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자신의 몫을 찾을 것이다.
유럽 전역에서 포퓰리즘 세력들은 모든 불행의 근원을 EU에 떠넘긴다. 하지만 이런 유럽 안배의 정치가 주는 교훈은 각자의 목소리를 내되 상호 양보와 배려의 덕목이 다수의 공존을 가능케 한다는 진리다.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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