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식의 세계속으로] 영화 잔치, 전 세계를 무대로 만들자
민족콘텐츠 무리한 국제화는 부적절 / 개방성·다양성으로 명성 키워 나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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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작품 ‘기생충’이 프랑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차지함으로써 100년 역사의 한국 영화가 세계 정상에 올랐다. 칸은 독일의 베를린,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를 이루는데 그중 가장 권위 있는 으뜸의 축제다. 한국 영화의 성공을 자축함과 동시에 칸 영화제 자체에도 관심을 가져볼 만한 절호의 기회다.
세계 영화 권력구조의 핵심은 단연 미국 할리우드에 있다. 오랜 전통의 영화시장이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고 가장 많은 자본을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중국이 미국을 짓누를 기세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처럼 영화 인프라의 ‘하드파워’에서 미국이나 중국을 능가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럼에도 칸, 베네치아, 베를린이 명성을 유지하는 비결은 간단하다. 첫 번째 묘수는 개방성이다. 미국의 오스카상이 상당 부분 ‘할리우드를 위한 할리우드의 축제’라면 유럽의 영화제는 세계를 위한 국제무대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2010년대 황금종려상 수상 작품의 국적은 매년 달랐고, 그 가운데 미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영화 대국의 작품도 한두 편뿐이다. 튀니지, 터키, 태국과 같은 비서구 지역에 이어 작년에는 일본, 그리고 올해는 한국이 상을 탔다. 베네치아나 베를린도 이탈리아나 독일 영화의 무대가 아니라 세계 영화가 경쟁하는 장이다.
많은 대중에게 호소하며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상업성보다는 사회 소수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드러내는 작품을 선호한다. 난민문제를 다룬 ‘디판’(2015)이나 사회적 소외의 이야기를 다룬 ‘아이 다니엘 블레이크’(2016), ‘어느 가족’(2018) 등 최근 황금종려상 수상작은 영화의 주류에 편승하기보다는 새로운 주제와 시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영국 국가대표가 월드컵 우승을 하지는 못해도 프리미어리그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축구 판을 마련했듯이,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독일은 세계 영화의 무대를 열고 잔치를 벌이는 셈이다.
이런 유럽 국가의 소프트파워 성공 사례는 한국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미국이나 중국, 또는 인도처럼 큰 대륙 규모의 국가가 추구하는 패권 전략은 우리에게 적절하지 않다. 게다가 한식이나 태권도 등 한국 민족 콘텐츠를 무리하게 국제화하려는 노력보다는 세계의 다양성을 끌어 모아 잔치판을 벌이는 전략이 훨씬 현명하다는 교훈이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대한민국은 확실한 지리적 장점과 열린 사회문화적 환경을 보유한 나라다. 이를 활용해 21세기 한국의 칸을 만드는 것은 우리 상상과 실천의 몫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