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잘 안 보이는 학생이 들어온 적이 있는데, 그 학생이 들어와 바로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있더라고요. 아마 셀프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가게인 줄 몰랐던 모양이에요. 다행히 방학 중이고 손님이 별로 없어서, 제가 직접 메뉴를 하나하나 불러주고 반찬이나 물 같은 셀프 서비스도 도와준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마 학기가 시작되고 손님이 많은 상태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아마 그때 처럼 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본교 매장 근처 일식집 도쿄라멘의 사장 A 씨가 본지 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처럼 특히 요식업계를 중심으로 ‘키오스크(무인화 주문기)’ 도입이 보편화되며 장노년층과 장애인 등에게 불편을 야기하고 있다.
최근 식당에 가면 직원에게 직접 주문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제는 다들 터치 몇 번으로 원하는 메뉴를 주문하는 시대가 왔다. 직원이 매장에 상주하기는 하지만, ‘키오스크(무인화 주문기)’를 도입한 매장인 경우 높은 확률로 주문을 받기 위한 인력은 아니다. 많은 매장들이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완료한 후 음식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낯설었던 키오스크가 어느새 우리의 일상 속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다.
지난해 12월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림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2019 외식소비 트렌드’의 키워드로 ‘비대면 서비스화’를 선정했다. 또한 농림부는 무인화·자동화의 확산에 따른 키오스크, 전자결제 등의 발달로 외식 서비스의 변화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최저 임금 인상으로 늘어난 인건비 부담을 완화하는 측면에서, 젊은 층의 비대면화 서비스 선호 현상도 키오스크가 확산되는 현실과 맞물려 있다.
그러나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이 주는 편리함과 동시에 키오스크의 그림자 역시 짙어지고 있다.
약자를 위한 발전은 없다
70대 유튜브 크리에이터 ‘박막례 할머니’는 지난 1월 4일(금)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한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직접 주문해보는 영상을 올렸다. 영상 속 박막례 할머니는 “카드가 없고 기계도 못 만지면 못 먹는 거 아니냐”며 “햄버거를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또한 “우리에게 맞지 않는 세상이 온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지난달 25일(월) 발표한 ‘2018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보취약계층’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이 일반 국민의 68.9%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 취약계층에는 △장애인 △장노년층 △농어민 △저소득층이 포함되며,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컴퓨터‧모바일 스마트기기 보유 여부 △인터넷 접근 가능 정도 △기본적인 컴퓨터‧모바일 스마트기기‧인터넷 이용 능력 △컴퓨터‧모바일 스마트기기‧인터넷 양적‧질적 활용 정도를 기준으로 종합적으로 측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과는 대조적으로 키오스크를 도입하는 매장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키오스크 확산이 가장 두드러진 곳은 패스트푸드점으로, 대형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 △롯데리아 △맥도날드 △버거킹 △KFC 키오스크 도입률은 60% 전후거나 그보다 훨씬 웃돈다. 올해 1월을 기준으로 키오스크는 △롯데리아: 1,350개 매장 중 826개(61.2%) △맥도날드: 420개 매장 중 250개(59.5%) △버거킹: 340개 매장 중 230개(67.6%) △KFC: 193개 매장 중 181개(93.8%) 매장에 적용 중이다.
증가폭도 가파르다. 롯데리아의 경우 키오스크 도입률이 2015년에는 6%에 그쳤던 것에 비해 지난해 61%로 증가해 3년 사이 급격히 확대됐다. 키오스크는 외식 산업을 넘어 △영화관 △마트 △교통 △편의점 등의 업계로 차츰 지평을 넓히고 있다. 이에 따라 정보 취약계층에 해당하는 인구는 일상 전반에서 불편을 겪고 있다. 특히 장노년층 인구의 경우 최근 우리나라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장애인 인구도 불편으로부터 예외는 아니다. 자세한 법률이 없는 민간 차원은 물론이고 법률로 장애인 접근성으로 보장하도록 하는 공공기관이 설치한 키오스크에도 접근성을 보장하는 기기의 비율은 극히 낮다. 국가정보화기본법 제32조에서 국가기관 등이 정보나 서비스를 제공할 때 장애인이 웹사이트를 쉽게 이용 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나마 지자체의 민원발급용 기기 같은 키오스크는 전체의 약 59% 가, 은행 자동화기기에서는 약 93%의 기기가 장애인 접근성이 보장돼 있긴 하지 만 이 둘을 제외하면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철도공사나 공항공사가 운영하는 전국 기차역과 공항에 설치된 키오스크의 대부분은 장애인 접근성이 크게 떨어진다. 전국 공항에 설치된 175대의 기기 중 장애인이 쉽게 쓸 수 있는 기기는 단 4대뿐이다. 대부분의 키오스크는 휠체어를 타고 손이닿기 어려우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이어폰 단자나 점자조차도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접근성 보장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물리 키보드 설치 △점자표기 △이어폰 접속 안내 등이 있다.
키오스크는 일어서 있을 때의 눈높이에 맞춰서 설계됐다.
본교 근처에서 찾아볼 수 있는 키오스크 도입 매장은 어떤 상황일까. 본지 기자가 실제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교내·외 매장을 찾아가 보았다. 직접 찾아간 매장은 교내 학생회관 3층에 위치한 △학생식당 1개 매장과 본교 중문 건너편에 위치한 △맥도날드 숭실대점 △동경야네 △도쿄라멘 숭실대점 △커피온리 숭실대점 △쥬씨 숭실대점 5개 매장으로, 총 6개 매장이다. 각 매장의 키오스크 구성과 사용에 대해 비교‧분석해봤다.
6개 매장 중 △동경야네 △커피온리 △도쿄라멘의 경우 키오스크만으로 주문을 받고 있었다. 세 매장 모두 키오스크 고장이나 기타 돌발 상황 발생에 대비해 상주하는 직원이 있으나 실제로 직접 주문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장노년층이 키오스크의 사용에 있어서 자주 겪는 불편 중 하나는 키오스크 화면 상의 과도한 영어 표현 혼용이다. 본교 근처에 위치한 5개 매장 중에서는 맥도날드가 ‘테이크 아웃(포장)’이나 ‘주문하려면 ‘터치(누르다)’해주세요’ 등의 많은 영어 표현을 사용하고 있었다. 외래어가 섞인 표현은 젊은 층에게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지만 영어 표현이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표현일 수 있다.
또한 키오스크는 섰을 때의 눈높이에 맞춰 설계됐기 때문에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의 경우에는 키오스크 사용이 불편할 수 있다. 비교적 휠체어로 진입이 용이한 커피온리와 맥도날드 매장에서 휠체어를 타고 직접 이용해본 결과 주문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신장에 따른 불편함이 있었다. 커피온리 키오스크의 경우 신장 175cm의 기자는 터치스크린에 손이 닿았으나 160cm의 기자는 닿지 않았다. 그러나 손이 닿더라도 화면을 보기에는 어려웠다. 휠체어에 앉아 주문하게 되면 화면을 아래에서 바라보게 되는데, 이 경우 사실상 화면의 메뉴들이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본교 근처 5개의 매장 중 키오스크의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매장은 없었다.
맥도날드의 키오스크.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다.
그러나 맥도날드의 경우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을 위한 화면이 별도로 준비돼 있어 비교적 이용이 편리했다. 키오스크의 높이 자체가 조절되지는 않지만, 화면 우측 하단에 있는 장애인 표시를 누르면 화면이 축소되며 아래쪽으로 창이 내려온다. 축소된 화면에서는 글씨가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어 작은 글씨를 확대해서 볼 수 있 는 기능도 있었다.
본교 학생식당에 설치돼 있는 키오스크 또한 커피온리의 키오스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키오스크 터치 스크린이 높게 설치돼 있어 175cm 기자의 경우도 스크린에 손이 닿지 않았다. 학생식당에는 직접 주문할 수 있는 직원이 상주하고 있으나, 학생식당 내부 협소한 공간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사람이 많을 경우 이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키오스크로 주문 시 현금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젊은 층에서는 현금 결제가 줄어드는 추세이나, 현금 결제가 더 익숙한 장노년층의 경우 결제 방법이 없어 구매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식당 키오스크와 맥도날드 키오스크에서는 현금 사용이 불가능했다. 맥도날드의 경우 지점별로 키오스크의 기능이 상이하나, 숭실대점은 현금 결제를 위해서는 카운터의 점원을 통해 결제해야 한다. 그 외 매장은 현금 사용이 가능했으나, 커피온리의 경우 5만 원권은 사용이 불가능 했다.
한편 전반적인 키오스크의 인터페이스가 사용자 친화적이지 못하다는 점도 발견할 수 있다. 키오스크에서 외국어를 지원 하는 매장은 5곳 중 맥도날드 한 곳뿐이었다. 외국어 지원을 하지 않는 학생식당과 그 외 4개 매장에서 외국인은 사진에 의존해 주문해야 한다. 그러나 사진이 부정확한 경우가 있어 사진과 다른 메뉴를 받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도쿄라멘의 사장 A 씨는 키오스크 화면에 나온 사진과 실제 음식이 차이가 있어 주문에 착오가 생겼던 사례를 설명했다. A 씨는 “카레 같은 메뉴의 경우 밥이 기본으로 있는데, 화면에 있는 이미지에서는 이 점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아 외국인 학생들이 밥을 추가로 주문하는 경우가 있었다” 며 “본사에 요청하여 업데이트를 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맥도날드 키오스크는 글자의 크기나 메뉴의 이미지가 불분명해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시력이 좋지 않은 이용자의 경우 정확한 식별이 어려울 수 있다.
키오스크 화면에서 제품의 성분표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본교 근처 5개 매장 모두 사진으로 음식의 모습을 지원하지만, 정확한 성분 구성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제품의 명칭으로 유추할 수 있으나 외국어 지원이 되지 않을 경우 외국인의 경우에는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제품의 정확한 성분을 알지 못하면 알레르기나 종교적인 이유 등으로 먹지 않는 음식을 구별할 수 없다. 본교 학생식당은 별도의 성분 표기는 없지만, 직원이 상주하는 매대 근처와 학생회관 4층과 이어지는 계단 앞에 설치된 진열대에서 음식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키오스크 상에서는 결제 취소나 주문 수정도 어렵다. 본교 근처 5개의 매장 모두 결제를 취소하기 위해선 카운터에 가서 별도의 요청을 해야 한다. 커피온리의 경우는 주문 취소를 키오스크에서 해야 하지만 매장에서 설정한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기 때문에 점원의 마찬가지로 점원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키오스크 사용에 익숙지않은 고객의 실수가 있을 경우 혼잡한 상황에서 직원의 도움이 어려울 수 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하지만…실질적인 해결책은 없어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6개 매장 모두 고객이 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 안에 있는 직원이 나와 직접 키오스크 이용을 도와주는 방법밖에 해결책이 없었다. 사실상 6개 매장 모두 키오스크 사용이 익숙한 대학생들이 주된 고객층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장애인이나 장노년층에 대한 고려가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커피온리에서 일하는 알바생 B 씨는 “중장년층 고객들은 카드를 잘못된 곳에 넣거나 메뉴 선택에서 실수를 하는 등 이용에 불편을 자주 겪는 것 같다”며 “주방에 있다가 직접 나와서 도와드리는 방법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쥬씨의 매니저 D 씨도 “보통은 카운터 밖으로 나가 원하시는 음료를 여쭤보고 도와드리지만 바쁜 시간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장애인의 경우 대부분 같이 있는 봉사자가 대신 주문하는 것을 여러 번 봤다”고 말했다.
실질적인 문제 해결이 지연되는 이유로 장애인 접근권을 고려할 것을 강제하는 법적 의무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016년 제정된 ‘공공 단말기 접근성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무인화 단말기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을 보장 하도록 단말기의 설계·제작 과정에서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시각적 콘텐츠는 동등한 청각정보와 함께 제공되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하지만 이는 ‘가이드라인’에 불과하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이 없다. 은행의 키오스크가 높은 장애인 접근성을 갖추고 있는 이유는 관련 고시와 표준규격 등의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장애인의 정보 접근성 확보를 위해서는 법적 제도의 확립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김훈 정책연구원은 “키오스크를 비롯해 일반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IT기술이 발전할수록 장애인들은 소외되곤 한다”며 “기기 교체 시기 등에 이미 제정된 표준을 반영만 하더라도 접근성이 충분히 확보될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정부 차원에서 이뤄진 키오스크 사용 현황이나 장애인 접근성에 대한 실태 조사도 전무하다. 국회 입법조사처 김대명 입법조 사관의 ‘키오스크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제고방안’ 보고서를 보면 키오스크가 공공 부문과 민간부문에 걸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음에도 사용 현황이나 장애인 접근성 보장 여부 등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실시한 조사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 년 기준 전국에 3천 4백여 대의 키오스크가 설치된 것으로 추산될 뿐, 이에 대한 정확한 현황 파악조차 부재한 것이다.
이에 따라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올해 2월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은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키오스크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김성수 의원은 “키오스크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정보 취약계층이 편의성을 이유로 차별을 겪어서는 안 된다”며 “정부 차원의 무인 단말 설치 현황, 접근성 보장 여부 등에 관한 전반적인 조사를 실시하고 자세히 분석해 정책에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이러한 무인화의 흐름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GS25가 지난해 9월 마곡 사이언스 파크에 ‘스마트 GS25’를 오픈했다. ‘스마트 GS25’에서는 고른 상품을 셀프 결제 테이블에 올려 놓으면 스마트 스캐너가 이미지와 무게를 감지해 1초 내에 스캔하고, 계산까지 도와준다. 물론 아직까지 완전한 무인 매장의 수는 많지 않지만 무인화 바람이 거세지는 것은 현재로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 시행하는 장노년층 정보화 교육의 필요성도 강조되고 있는 추세다. 이에 대해 한국정보화진흥원 주윤경 수석연구원은 “이전까지는 기본 활용 중심의 교육이 이뤄졌다면 올해부터는 고령층이 실생활에서 이용할 수 있는 교육을 준비 중”이라며 “올해는 특히 취약계층 중에서도 고령층에 집중하는 해가 될 것” 이라고 밝혔다. 이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며 디지털화를 피해갈 수는 없다”며 “장노년층이 VR(가상현실)을 이용해 은행 가보기, 키오스크 이용하기 등의 간접 체험을 통해 도움과 용기를 주는 방향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장애인단체총연합회 이용석 정책실장은 “지하철 전역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도 도입 요구 당시엔 비용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지만 설치 이후에는 모두가 이용하고 있는 것처럼 사실 혜택은 모두에게 돌아간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