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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비주간논평] 북미회담이 산으로 간 까닭 (3/6)

    • 등록일
      2019-03-13
    • 조회수
      362

[창비주간논평] 북미회담이 산으로 간 까닭

이정철

이정철                            

  북미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협상을 ‘리셋’했다는 비관론이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이나 조선중앙통신 성명에 비추어 볼 때 리셋 주장이 그리 자신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폼페이오의 자기 정치

  많은 이들이 이번 회담 실패의 원인을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역할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상황을 보면 볼턴은 오랫동안 대북 강경론을 펼쳐왔을 뿐, 특별히 그가 행정부 내에서 권력 지위가 상승된 징후는 없다. 이번 회담 결렬은 27일 만찬장에서 이미 기정사실화되었다. 만찬장에 던져진 볼턴의 비핵화 문서가 그 원인이 되었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볼턴을 탓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정치적 고려가 필요하다.

당시 회담의 참석자는 대통령 외 폼페이오 국무장관 그리고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의 3인이었다. 회담에 임박해 이미 만들어진 합의문 초안을 뒤집은 결정자는 물론 대통령 본인이었겠지만, 참석자의 면모로 볼 때 그를 지근거리에서 설득한 참모는 결국 폼페이오였을 가능성이 유력하다. 실제 지난해 7월 7일 자신의 3차 방북 이후 폼페이오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의구심을 표해왔다. 북한 역시 당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나왔다’며 비난한 이래, 폼페이오에 대한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폼페이오가 자기 정치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 것도 이 시기를 전후해서였다.

비건과 볼턴

  사실 한국의 협상파들이 이번 회담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본 것은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는 1월 31일 스탠포드대학 연설에서 자신의 대북 협상 로드맵을 공개했는데, 북한과의 단계적 협상에 동의하고 대량살상무기를 협상 입구에서 제외한다는 파격적인 안이었다.

  “상대적 조건에서 볼 때, 우리는 이 문제(대량살상무기)가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우리는 우리가 함께할 수 있고, 신뢰를 쌓고…”

  위의 발언에서 드러나듯이 비건의 구상은 북한이 주장해온 단계론을 수용함으로써 접점을 찾고 이로부터 신뢰구축 정도에 따라 협상을 진전시켜나간다는 논지였다. 비건은 이 로드맵을 발표한 후 곧바로 평양을 방문해 실무회담을 진행했다. 소위 스몰딜에서 빅딜로 가는 프로세스적 사고를 북한에 제안한 것이었다.

  비건의 연설은 꽉 막힌 협상 국면을 열 수 있는 획기적 내용이었고 협상을 원하는 많은 이들이 기대를 걸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반대파들의 입장에서 비건의 스탠포드 연설은 항복 선언에 가까운 것이었고, 뒤늦게 알려졌지만 그들 사이에선 비건 견제령이라는 경고장(red flags)이 이미 발해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폼페이오와 트럼프는 왼편에 비건을, 오른편에 볼턴을 두고 북한과의 협상에 놓을 패를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폼페이오가 선택해 대통령을 설득한 패는 볼턴의 ‘노딜’안이었다. 한국인의 친구 비건은 버림받은 것일까?

분강지구 논란의 득실

  이번 북미회담에서 논란이 된 영변+@는 영변 주변의 분강지구 시설로 알려지고 있다.(「미국서 찾아내 북한이 놀란 곳은 분강」 중앙일보 2019.3.5) 영변의 고농축우라늄 설비에 있는 원심분리기가 2천대 규모라지만 분강지구는 1만대의 원심분리기가 있는 시설이란다. 이 정도 규모의 설비가 수년간 가동되었다면 그동안 우리가 추측해온 북한의 핵물질 보유량, 나아가 핵무기 숫자 정보는 수정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분강지구 시설은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측에 부메랑이 될 듯하다. 북한의 핵 보유 추정량 증가 속도에 변화가 생기면 곧 게임의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언제나처럼 제재 강화의 속도와 핵무기 증대의 속도가 부딪힐 때, 그 리스크를 안고 전략적 인내에 돌입해야 하는 한 시간은 누구 편일지 알 수 없는 이유이다. 

  한편 분강지구라는 패를 먼저 보인 쪽은 미국이다. 그동안의 신고 논란은 북한이 패를 공개하도록 하는 압박 게임의 일환이었다. 북한이 패를 보이면 그들의 진심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먼저 패를 보인 이상 다음 수순은 북한의 몫이다. 북한이 분강지구를 해체하겠다고 나서면 미국 측이 거부할 명분이 없어진다. 미국이 또다른 시설에 대한 패를 가지고 북한의 거짓을 증명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많다. 북한이 패착을 두지 않는 한, 미국 측이 내밀 카드를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패보기 게임의 결과는 항상 성급한 측이 비용을 부담하는 이유이다. 

미국식 계산법과 제재의 정의

  3월 1일 새벽 기자회견에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제재 문제에 대한 ‘미국식 계산법’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주목을 끌었다. 그간 북한 측은 유엔 제재안이 담고 있는 협상안 즉 “평화적이고 포괄적인 해결을 증진하기 위한 여타 국가들의 노력을 환영”한다는 구절에 방점을 두고 자신들이 도발을 중단하고 협상에 나서는 한 그에 대한 상응 조치가 주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표명했다. 그러나 이번에 대북 제재가 징벌을 위한 것, 결과적으로 북한 정권에 대한 징벌이라는 발상에 기초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의심하게 되었다고 했다. 소위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가 아니라 징벌적 정의(punitive justice)에 기초한 유엔 제재, 결국 자신들의 무장해제와 선행동을 요구해온 지난 시기 논법과 다를 바 없는 미국식 계산법의 본질에 김정은 위원장이 좌절한 듯하다고 밝힌 것이다.

  기자회견 직후 골든타임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한국정부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좌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는 행동하는 자들에게 주어진다. 문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밝힌 것처럼, 평화의 봄을 찾아 “뛰어나가 평화를 붙잡을” 때다. 

이정철 / 숭실대 교수, 정치학

2019.3.6.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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