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유령 대통령’을 거부하는 알제리 시민 시위
아프리카 북단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나라 알제리에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바람이 뜨겁게 불고 있다. 몇 주 전부터 간헐적으로 시작된 시위가 지난 8일에는 전국의 도시로 빠르게 번져나가 거대한 군중이 주요 도시의 거리와 공간을 가득 메우는 수준으로 확산되었다. 알제리 국내뿐 아니라 해외 거주 알제리인들도 시위를 조직하여 세계적으로 맞불을 들고 일어났다.
국민 저항의 발단은 1999년부터 알제리를 집권하는 82세의 고령 대통령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가 올해 다시 대선 후보로 나서 다섯 번째 임기에 도전하겠다는 발표였다. 이미 20년을 장기 집권한 대통령이 새로운 임기에 다시 도전하겠다고 밝히자 국민들이 “더 이상은 안 된다”고 외치며 반대 시위에 나선 것이다. 부테플리카는 이미 여러 차례 헌법의 개정을 반복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국정의 규칙을 망가뜨리는 행태를 보여 왔다.
시위에 나선 알제리의 청년층은 부테플리카의 장기 집권도 문제지만 2013년 뇌출혈 이후 정상적인 건강상태인지도 확실치 않은 인물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는 권력층의 오만에 잔뜩 화가 난 것으로 보인다. 군부와 관료, 재계로 구성된 권력층이 얼마나 국민을 우습게보면 유령 같은 노인을 후보로 내세워 권력과 부의 독점 체제를 유지하려 하는지를 보여준다는 말이다. 이번 시위는 따라서 최소한의 국민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시민들의 반발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달 부테플리카가 대통령 후보로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을 한 것은 대리인을 통해서였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당사자는 스위스의 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대통령 선거는 다음달 18일로 예정되어 있는데 그 때까지 귀국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처럼 알제리 권력층은 후계 구도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욕심만으로 똘똘 뭉친 셈이다.
올 봄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알제리 국민의 시위가 놀라운 또 다른 이유는 1990년대 이후 알제리인들은 줄곧 정치를 회피하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줘 왔기 때문이다. 당시 알제리는 10여 년간 내전에 가까운 이슬람근본주의 테러리즘과의 피비린내 나는 경험을 하였다. 1999년 등장한 부테플리카는 권위적이었지만 적어도 평화를 가져온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국민의 정치 무관심에 편승하여 장기 집권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10년대 아랍의 봄이 지중해를 뒤흔들 때도 알제리는 침묵하고 있었다. 알제리는 다른 아랍 국가에 비해 뒤늦게 부패와 무능의 독재에 저항하고 나선 셈이다.
부테플리카는 1950년대에 프랑스 제국주의를 타파하고 독립을 쟁취하려 투쟁한 세대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프랑스와의 장기 전쟁(1954-1962년) 끝에 알제리는 독립을 얻었고 부테플리카는 26세에 신생 알제리의 외무장관으로 취임하여 1963년부터 1979년까지 16년간 알제리 외교수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1999년부터 다시 국가원수로 알제리를 통치했으니 그야말로 현대 알제리의 역사의 화신(化身)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 알제리의 젊은 세대는 휠체어를 타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노인의 욕심을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다고 외친다. 게다가 이 노인을 앞세워 알제리의 이권을 요리하며 이익으로 뭉친 권력층에 대해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알제리는 인구의 중위 연령이 28세일 정도로 젊은 나라이며 과거보다 훨씬 높은 교육 수준을 자랑한다. 엘리트가 주권과 독립을 쟁취한 투쟁의 정통성으로 무지한 군중을 교육하고 이끌 던 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모양새다. 이제 알제리는 새로운 정치로 21세기를 열어야 하는 시점에 도달하였다.
2010년대 지중해 근역에서 불붙었던 아랍의 봄은 오랜 독재자들을 축출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희망을 주었지만, 이집트처럼 새로운 독재를 낳거나 리비아나 시리아처럼 내전의 혼란에 빠뜨려 상황이 더욱 악화되기도 하였다. 기존 권력의 축출만큼이나 새 민주권력의 구상과 창출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알제리에서 2019년 봄 시위 군중과 권력층의 대립이 어떻게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낼지 관심을 요하는 이유다.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