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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신문] ‘세금 천국’의 종말, 걸음을 떼다 (21.06.09)

    • 등록일
      2021-06-10
    • 조회수
      230

‘세금 천국’의 종말, 걸음을 떼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 경제의 주요 국가들이 다국적 기업의 탈세 행위를 통제하기 위한 공동 대책에 나섰다. G7의 재무장관이 지난 5일 런던에 모여 세계의 모든 국가가 최소 15%의 법인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글로벌 법인세’의 기준을 세운 것이다.

 

현재 세계에는 낮은 법인세로 대기업을 유치하는 세금 천국이 다수 존재한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대기업들은 자신이 활동하는 국가가 아니라 세금이 낮은 국가에 본사를 등록해 놓고 버젓이 합법적 탈세를 일삼고 있다. 또 기업들이 세제에 따라 옮겨 다니기에 국가는 억지로 세금을 낮춰야 하는 부작용을 낳게 되었다. 낮은 세금, 즉 ‘바닥을 향한 경쟁’에 불을 붙인 것이다.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70년대 이후 세계 자본주의는 대기업이 국가를 줄 세우는 형국이었다. 낮은 세금과 탈규제를 찾아 기업들은 철새처럼 날아다니고 국가는 경쟁적으로 경계를 낮추는 모습 말이다. 이번 G7의 합의는 어쩌면 국가가 기업을 통제하고 나서는 반대 움직임의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주요 국가가 세계 차원에서 최소한의 법인세율을 규정함으로써 세금 천국의 부당경쟁을 축출하고 대기업을 길들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가 실현된다면 낮은 세금으로 경제 발전을 이룩한 국가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유럽의 경우 아일랜드나 룩셈부르크는 대표적으로 세제를 통해 다국적 기업을 유치한 나라들이다. 예를 들어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 디지털 대기업들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큰 시장에서 수입을 올린 뒤 법인세가 12.5%에 불과한 아일랜드에서 세금을 정산해 왔다. 덕분에 아일랜드와 룩셈부르크는 1인당 10만 달러 수준의 세계 최고 국민소득을 자랑하게 되었다. 최소 법인세율을 지구 전체에 적용한다면 대기업의 절세 전략은 바뀔 것이다.

 

이번 결정이 가능했던 것은 몇 가지 요인 덕분이다. 우선 코로나 위기로 인해 세계 경제가 심각한 지경이 이르렀다. 특히 재정 지출이 늘어나고 공공부채가 폭발하여 세수에 대한 갈증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에 덧붙여 미국에서 집권한 조 바이든 새 행정부는 국내 증세를 위해서라도 국제적 탈세 전략을 통제할 필요가 있었다. 또 지난 몇 년간 유럽에서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의 국가가 소위 ‘디지털 세금’을 통해 미국의 대기업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G7에서 일궈낸 합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건너야 할 산이 많다. 일단 다음 달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리는 G20 회의에서 더 많은 국가의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 오래전부터 글로벌 법인세 아이디어를 놓고 작업을 해 온 OECD는 전형적인 서구 중심 클럽이다. 하지만 G20에는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다양한 개발수준의 국가들이 참여한다. 세계 차원에서 새로운 규칙을 수립하기 위해 넘어야 할 중요한 단계라고 볼 수 있다.

 

G7의 합의가 개도국을 향한 공정성의 아젠다를 포함하는 이유다. 선진 세력의 합의에는 세계 시장에서 높은 이윤을 창출하는 대기업들이 실제 활동하는 시장에서 부분적으로 세금을 내도록 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일례로 미국 기업 넷플릭스가 중국이나 인도에서 높은 수익을 올리면 해당 국가도 부분적으로 과세할 수 있다는 원칙을 세운 것이다. 지구 차원의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정치적 결단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다.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는 이런 노력은 분명 높이 평가할 만하다. 특히 디지털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미국이 자국 기업에 대한 법인세 강화를 인정하면서까지 다자주의적 접근법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긍정적인 요소다. 하지만 원칙에 대한 합의가 당장 현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 합의가 넘어야 할 가장 높은 산은 어쩌면 미국 국내 정치일지도 모른다. 이미 미국 공화당은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의 세금 주권을 외국 세력에 넘기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가 보여주었듯이 미래의 미국 대통령이 어렵게 이룬 국제적 합의를 단숨에 뒤엎는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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