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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시사매거진] [조홍식의 자본주의와 문화 | 물질문명의 파노라마(6)] 끊임없이 새롭게 뭔가 만들어 쓰는 인류

    • 등록일
      2021-06-03
    • 조회수
      257

호모 파베르, 재료와 함께 진화하다

처음엔 흙·돌·철 등 변형, 플라스틱부터 세상에 없던 소재 개발
20세기 반도체 등장으로 정보산업혁명, 인간·기계 경계 흐려져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고대 이집트의 석조 피라미드를 유리와 철강으로 재건한 모습. / 사진:위키피디아

도구의 사용은 인간과 짐승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네발로 땅을 딛고 이동하는 짐승은 기껏해야 입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반면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은 자유로운 두 손으로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 활용하는 능력을 발달시켰다. 손으로 목적에 따라 원하는 모양의 도구를 만들면서 인간은 생각의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특정한 물질을 사용해 모양을 바꾸다가 차츰 소재를 다양화시키고 또 섞어서 새로운 물질을 개발해 도구를 제작하면서 인간은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로 거듭났다. 이처럼 물질을 다루는 활동이 두뇌의 발달과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인류의 문명은 싹트기 시작했다.

 

미국의 건축학 교수 크리스토퍼 바트는 저서 [물질과 사고](Material and Mind)에서 물질과 정신의 세계를 구분해서 보지 말고 시너지를 일으키는 양날의 검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행동이란 결국 정신과 물질의 결합이라고 볼 수 있으며, 문명을 탄생시킨 문자도 물질에 정신을 새기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바트는 메소포타미아의 문자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진흙의 역할을 강조한다. 원뿔은 곡식의 일정한 양을 나타내고 타원은 기름 항아리를 의미하는 등 사람들은 진흙으로 다양한 모양의 토큰을 빚어 사물을 표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점차 추상화의 과정을 거친 뒤 결국 점토판에 상징과 숫자를 표기하는 문자를 만들게 됐다는 설명이다.

 

인간의 삶에서 도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석기·청동기·철기 등 도구의 재료에 따라 인류 문명을 구분한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유연한 진흙이 글자를 만들기에 적합했다면 돌이나 금속은 단단한 무기와 기구에 적절했을 것이다. 현대인은 용도에 따라 사용하는 도구의 재료를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류의 실제 역사는 돌에서 구리로, 그리고 철로 재료에 따라 도구가 형성됐고, 뒤이어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의 발전사는 결국 재료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역사다. 인류 초기를 지배하는 돌·구리·철 등을 넘어 비단이나 종이·유리의 개발은 문명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낳았다.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세계로 확산한 산업혁명은 알루미늄이나 플라스틱·고무 등 재료 분야에서 신천지를 열었다, 자본주의란 물질의 다양성이 폭발하는 재료 팽창의 결과라고 불러도 손색없다.

 

나무는 문명의 대들보


▎러시아 카렐리아 지역 키지 교회(Kizhi Pogost), 18세기에 지어진 목조 건물이다. / 사진:위키피디아

재료의 역사를 살펴보면 자연이 풍부하게 제공하는 물질로부터 도구의 발전이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원숭이조차 나뭇가지를 사용해 장난치거나 구멍을 파고 휘젓기 위한 기본적인 도구로 사용하며 돌을 이용해 견과류를 깨 먹기도 한다. 돌과 나무는 인류가 처음으로 사용한 자연의 재료였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나무는 돌만큼 단단하지는 않지만 쉽게 다룰 수 있는 적당하게 연한 재료다.

 

건축에서 돌과 나무는 동서양의 대조적인 문화 차이를 보여준다. 바빌로니아나 페르시아, 이집트부터 그리스까지 거대한 신전과 건축물은 단단한 돌이 재료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로마의 콜로세움은 석조 건축이기에 21세기까지 굳건히 살아남아 웅장함을 자랑한다. 시간의 흐름을 멈추지는 못해도 세월을 극복하는 끈질긴 힘을 마음껏 드러내는 셈이다.

 

한반도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는 돌을 활용하지만 동시에 나무가 건축의 뼈대를 형성한다. 기둥과 들보는 기본적으로 목재다. 바닥도 돌이나 타일보다는 나무를 까는 마루가 대세다. 차가운 느낌의 돌에 비해 나무는 부드럽고 따뜻하다. 나무를 많이 사용하는 동아시아에서 종이가 발명된 것도 우연이 아닐 수 있다. 나무의 단점은 돌보다 쉽게 훼손되고 화재의 위험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석기·청동기·철기의 시대 구분은 고고학에서 나온 분류법이다. 달리 말해 인류의 자취를 구분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시대 구분이라는 말이다. 만일 나무로 만든 도구가 썩거나 불타 사라지지 않았더라면 목기 시대가 한 부분을 차지했을 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 나무는 시대를 초월해서 인류와 함께한 문명의 대들보라 할 수 있다.

 

나무 중심의 동양과 돌을 주축으로 하는 서양을 구분하는 것도 너무나 도식적이다. 눈에 띄는 건축물만 기준으로 삼은 구분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를 가로지르는 만리장성은 돌로 쌓은 인류 최대의 축조물이다. 또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돌로 만들었으나 목재 바퀴와 기구, 배가 없었다면 세워지지 못했을 것이다. 15세기 이후 유럽이 세계를 누비는 대항해시대를 연 것도 나무로 만든 선박 없이는 불가능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인류 문명과 환경의 관계를 고민한 역작 <붕괴>에서 남태평양 이스터섬의 운명을 소개한다. 21세기 세계인의 뇌리에 이스터섬이란 수십 톤에 달하는 거대한 마우이 석상으로 새겨져 있다. 중국의 만리장성과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듯 이스터섬은 돌로 만든 마우이가 상징이다. 이 놀라운 석상은 자신들의 신화 속 영웅이자 신(神)인 마우이를 부족들이 경쟁적으로 세운 풍요의 상징이었다. 충분한 식량 생산으로 석상 건설에 많은 인력이 동원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000년~1600년 사이 600여 년 동안 꾸준히 발전했던 이스터섬의 문명은 17세기 갑자기 붕괴해 버렸다. 당시 거대한 돌은 나무를 사용해 이동했을 것이다. 따라서 부족 간 경쟁심에 석상을 부지기수로 세우는 과도한 문명 게임으로 섬의 나무를 모두 소멸시켜 사회가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지리적으로 고립된 이스터섬은 마침내 땔감도, 배를 만들 수 있는 나무도 없는 상황에서 문명이 붕괴된 전형을 보여주게 되었다. 나무는 돌처럼 가시적 피조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이 모든 문명의 형성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기본 물질이자 재료였다.

 

하이테크 상품 도자기


▎이스터 섬의 마우이 석상은 자원 고갈을 일으켜 문명의 붕괴를 낳았다. / 사진:위키피디아

자연이 인간에게 선사한 재료 중에는 돌과 나무만큼 유용한 흙이 존재한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흙으로 토큰을 만들어 문자로 발전시켰으며 벽돌을 제작해 건축에 사용했다. 흙은 물에 섞으면 빚기 좋은 재료로 변하고 마르면 단단해지는 변화무쌍의 카멜레온 재료라 할 만했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있는 메소포타미아는 숲이 드물어 목재는 귀했으나 진흙만큼은 지천에 널려있었다. 게다가 기후가 건조해 진흙으로 만든 벽돌이 녹아내릴 위험도 적었다. 비단 이곳뿐 아니라 진흙은 세계 어디서나 토기를 만드는 재료로 주목 받았다. 인간의 두 손이 처음에는 물을 마시거나 음식을 담는 식기의 역할을 했을 테지만 점차 흙으로 그릇과 주전자, 항아리 등을 빚어내기 시작하면서 야만의 삶에서 문명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토기는 열을 가하면 단단해진다. 다양한 형태를 만들거나 무늬를 그려 넣기는 나무보다도 쉬운데 구워내면 돌처럼 딱딱해지는 재료를 인간은 손에 넣었다.

 

흙과 금속의 공통점은 가열을 통해 재료의 성질을 바꾸거나 새로운 재료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청동기시대가 철기에 앞서 등장한 중요한 이유는 구리의 녹은 온도(950℃)가 철(1500℃)보다 낮기 때문이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을 섞어 더 강하게 만든 결과다. 일반 토기와 도자기의 차이도 굽는 온도가 좌우한다. 도기는 1200~1300℃에서 굽고 자기는 1300~1500℃까지 온도를 높여야 만들 수 있다.

 

토기가 물과 공기가 통과하는 숨 쉬는 용기라면, 도자기는 유약을 칠해 고온에서 구워냄으로써 방수 효과를 얻는다. 빛깔이나 소리, 두께와 모양을 조절할 수 있는 도자기는 그야말로 인간이 처음 만들어 낸 첨단 기술의 결정체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도자기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진국이었다. 이미 고대부터 중국의 도자기는 그 아름다움과 품질이 높은 단계에 도달했고 서역과의 교류를 통해 발전을 거듭했다. 예를 들어 흰색과 청색이 어우러진 중국 특유의 청자는 페르시아로부터 코발트블루 색채를 가미하는 기술이 도입되면서 개발된 결과물이다.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16세기에 국제 무역 네트워크를 만들기 시작한 유럽 사람들이 중국에서 가장 눈독을 들인 상품은 다름 아닌 도자기였다.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선박에는 바닥에 중국 도자기를 잔뜩 실어 배의 중심을 잡아주고 도자기 안에는 후추를 가득 넣어 운반하곤 했다. 중국 도자기에 동남아 후추를 뿌린 음식을 즐기는 일이 유럽 귀족과 부호의 사치로 부상했다.

 

송나라 때부터 도자기의 수도로 명성을 떨치던 중국 장시성의 징더전(景德鎭)은 급기야 세계의 도자기를 공급하는 공장으로 떠올랐다. 급증하는 유럽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징더전은 생산의 대량화에 착수했다. 동산을 이용해 도자기를 굽는 가마를 만들 정도로 수요가 늘어났다. 게다가 유럽 고객들은 성경 이야기나 그리스 신화 등 특정 디자인이나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구했고, 중국인들은 신기한 무늬를 그려가며 고객의 주문생산에 임했다. 주문자 상표 부착(OEM)까지는 아니더라도 구매자가 원하는 디자인 제조가 이미 16세기에 등장한 셈이다. 도자기 시장이 얼마나 돈벌이가 됐는지 유럽은 징더전에 산업 스파이도 파견했다. 포교를 위해 중국에 들어간 예수회 신부들은 징더전까지 진출해 하이테크 산업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정보를 수집한 뒤 정기적으로 유럽에 보고하곤 했다. 하지만 유구한 전통의 제조법을 단기간에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다.

 

임진왜란은 도공(陶工) 전쟁?


▎16세기 명나라 시대의 청자. / 사진:위키피디아

동아시아 문화를 공유하는 일본조차 중국이나 한반도의 도자기 전통을 모방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물며 가톨릭 신부가 아무리 징더전에 체류한다 한들 도자기의 비밀을 독파하기는 어려웠다. 기술만 들여오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아는 일본은 아예 도공들을 생포해서 도자기를 만들도록 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은 임진왜란을 통해 일본이 잡아간 조선의 도공들이 일본 도자기 문화 발전에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는지 상세하게 소개한다. 특히 일본의 영주들은 우수한 품질의 도자기 생산을 위한 경쟁이 붙으면서 조선에서 천대받던 도공들을 특별 대접했다. 이스터섬의 석상 경쟁은 문명의 붕괴를 가져왔으나 도쿠가와 일본의 다기(茶器) 경쟁은 발전을 낳은 듯하다.

 

중국에서 왕조가 바뀌는 명·청 교체기 때 정치적 변화로 인해 대외 무역이 중단되자 유럽인들은 도자기 수요를 일본에서 충당할 수밖에 없었다. 서양 역사 서적에서 임진왜란을 도공 전쟁(Potter’s War)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전쟁이 없었다면 일본의 도자기 생산도 불가능했을 것이고, 그러면 유럽인들은 도자기 수입이 끊기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도자기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18세기가 되면 주요 국가에서 직접 도자기 산업을 육성하는 데 앞장섰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일본과의 무역을 독점하면서 발전한 네덜란드는 델프트에서 도자기 산업을 발전시켰고, 독일 지역의 작센에서는 마이센이 도자기 중심으로 성장했다. 프랑스에서는 리모주라는 도시에서 도자기 제조에 나서 본격적인 유럽 경쟁 시대를 알렸다. 특히 영국의 웨지우드사는 산업혁명의 파도를 타고 도자기 생산의 기계화를 통해 대량생산의 규모를 확대했다. 증기기관을 활용해 도자기 생산 공정은 더욱 효율적으로 돌변했다. 게다가 웨지우드사는 당시 폼페이 유적 탐사를 비롯한 그리스 로마 문명의 고고학적 재발견이라는 시대적 유행을 포착해 유럽 고대사를 도자기 디자인에 반영하는 유럽화 전략을 폈다. 중국 기술을 도입해 생산과정을 현대화하고 디자인까지 유럽화함으로써 도자기는 이제 영국의 대표 상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19~20세기가 되면 도자기는 영국을 위시한 유럽의 명품으로 자리 잡는다. 도자기 무역의 방향도 동에서 서가 아니라 유럽에서 동아시아로 향한다.

 

그릇·접시·항아리·꽃병 등 식기나 생활용품을 중심으로 개발되어 자본주의 시대 무역을 지배한 도자기는 21세기에도 중요한 재료로 적용의 영역을 넓혀왔다. 예를 들어 현대 세계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화장실이나 욕실에서 변기나 욕조의 재료로 도자기는 약방의 감초와 같다. 고온에도 녹아내리지 않는 성격 덕분에 최첨단 기계나 제품에도 다양하게 활용되며 우주선이나 로켓에서도 빼놓을 수 없다. 실제 재료 공학에서도 세라믹은 금속이나 유리, 고무 등과 함께 재료의 커다란 종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세계를 하나의 그물로 엮은 철로(鐵路)


▎고대 그리스 문양을 넣은 18세기 말 영국 웨지우드의 도자기. / 사진:위키피디아

흙으로 만드는 용기가 토기에서 도자기로 발전 과정을 거쳤듯이 금속도 청동에서 철로 진화했다. 기본적인 기술 발전의 핵심은 온도를 높이는 데 있었다. 뜨거운 불로 구워냄으로써 토기가 도기와 자기로 다시 태어나듯 강한 화력은 구리뿐 아니라 철까지 녹여 더욱 탄탄한 재료를 만드는 기초가 됐다. 그러나 흙과 금속에는 큰 차이점도 있다. 일례로 토기가 도자기로 진화하면서 점차 특수한 재질의 흙을 구해야만 했다. 더 높은 기술과 더 희귀한 재료를 조합해야 훌륭한 도자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금속은 청동에서 철로 진화하면서 오히려 재료를 더 풍부하게 얻을 수 있었다. 지구 상에서 구리의 분포는 제한적인 데 반해 철광석은 어디서나 얻을 수 있는 재료였다. 철기 문화가 지역을 불문하고 고루 발달할 수 있는 조건인 셈이다.

 

철로 만든 무기는 인류 역사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앞서 언급한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대표적인 명작의 제목도 <총, 균, 쇠>다. 철은 총과 쇠를 만드는 재료다. 창이나 칼, 화살과 갑옷, 마차 등 전통 무기는 물론 총과 대포, 전함과 탱크 같은 현대 무기까지 철을 다루는 기술은 첨단 무기를 제조하는 힘이 됐다. 특히 쇠와 화약을 결합한 총으로 요약되는 근대식 무기는 서구가 세계를 지배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16세기부터 시작되는 대항해시대에 유럽인들의 세계 지배는 대포를 장착한 범선과 총을 보유한 군사력이 바탕이었다. 19세기에 강철로 만든 군함과 20세기 ‘육지의 무적’ 탱크 또한 서구 군사력의 획기적인 우위를 보장했다.

 

아름다운 도자기를 만들기 위한 노력처럼 강한 철을 생산하기 위한 집념은 영국의 산업혁명 과정에서 꽃을 피웠다. 철강의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19세기 이후 기술 발전도 이어졌다. 일례로 녹이 슬지 않는 스테인리스의 개발은 권총을 만드는 과정에서 얻어낸 비법이다. 금속의 다양한 조합은 끊임없이 새로운 재료들을 탄생시켰다. 스테인리스에 이어 가벼운 알루미늄의 활용은 항공산업 발전의 핵심이다.

 

무엇보다 철은 지구촌 곳곳을 하나로 묶어주는 그물의 역할을 한다. 1830년 영국의 맨체스터와 리버풀을 연결하면서 시작한 증기기관차와 철도의 역사는 21세기 현재까지 200여 년 가까이 현재진행형이다. 각 나라에서 주요 도시를 연결하면서 시작된 네트워크는 시간이 지나면서 대륙을 횡단하는 규모로 성장했고, 대륙과 대륙이 이어지면서 물리적으로 세계를 하나로 묶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해협에는 1994년 해저터널이 개통되면서 바다도 가로지르는 철로로 발전했다.

 

철강 산업은 한 나라 현대 산업의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처럼 여겨졌다. 19세기 중반 영국은 세계 철강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는 압도적 지배세력이었다. 독일과 미국이 19세기 후반 영국을 따라잡았고, 20세기가 되면서 일본이나 소련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21세기 현재는 세계 철강 생산의 절반을 중국이 차지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물가 수준을 대략 비교하기 위해 맥도널드의 빅맥 가격을 기준으로 하듯이 산업 능력을 얼추 가늠하려면 철강 생산량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돌이나 나무, 여기서 더 나아가 흙이나 철을 ‘요리’해 만들어 낸 재료들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줬다. 19세기가 되면 사람들은 화학 분야의 발전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재료를 탄생시키는 단계까지 발전한다. 우리가 흔히 플라스틱이라고 부르는 재료를 생각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상아를 사용해 만들던 안경테, 틀니, 피아노 건반, 칼 손잡이 등은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인간이 발명한 셀룰로이드로 자유자재로 대체하게 됐다. 화공학의 발전이 수많은 코끼리의 생명을 구해준 셈이다. 사진이나 영화를 찍는 필름도 화학 공정을 통해 생산한 재료를 사용한다. 사진의 시대를 풍미했던 미국의 대기업 이스트먼 코닥은 셀룰로이드 필름으로 세계를 제패했다. 필름이 이미지를 장기간 보관하는데 결정적이었듯 1950년대 등장한 폴리염화비닐의 레코드판은 음악을 대중화시킨 일등공신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재료, 플라스틱


▎시멘트와 철강 구조가 돋보이는 스페인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의 현대적 터미널 전경. / 사진:위키피디아

인류는 애초에 점토판이나 동물 뼈 등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또 가죽이나 종이를 활용해 기록을 남기고 책을 만들곤 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에는 화학 재료로 살아 숨 쉬는 이미지와 음악을 보존하고 되살리는 경지까지 도달한 것이다. [세계사를 바꾼 12가지 신소재]라는 책에서 사토 겐타로는 레코드판이라는 기록 매체의 등장으로 종이에 곡을 쓰는 작곡가의 시대는 가고 생동감 넘치는 연주가 음악을 지배하는 시대로 돌변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새로운 재료와 기술이 물질을 활용하는 영역의 지평을 넓히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현상이 다양하게 나타났다.

 

유럽 언어에서 플라스틱은 원래 조형이 가능한 성질을 의미한다. 진흙처럼 물로 반죽하여 새로운 모양을 만들 수 있을 때 진흙이 “플라스틱하다”고 표현한다. 플라스티시티(Plasticity)란 바로 이런 성격을 뜻한다. 조각을 플라스틱 예술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각종 용기나 비닐 등을 만드는 폴리에틸렌은 대표적인 플라스틱 재료다. 20세기는 사실 플라스틱의 세기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플라스틱이 지구를 뒤덮었다. 비닐봉지는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 된 지 오래고 페트병도 삶의 동반자로 성장하였다. 플라스틱이 사라진 삶을 상상해보면 역설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플라스틱에 의존하는 생활 방식을 발전시켜 왔는지 알 수 있다.

 

문제는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오염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특히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플라스틱은 이미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지구를 더럽게 만들었으며 2050년이 되면 지구의 바다는 미세 플라스틱의 양이 해양 물고기보다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400여 년 전 이스터 섬의 문명은 숲과 목재의 부족으로 종말을 맞았는데, 지금의 지구는 인간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소재가 넘쳐나 생태계가 대혼란을 겪는 상황에 도달했다. 실제 인간이 사용하는 재료들을 정확하게 따져 정리해 보면 90% 이상이 20세기 이후 새롭게 개발됐거나 기존의 재료를 섞어서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돌이나 나무를 철이나 유리라는 재료와 비교하면 문명의 발달을 느낄 수 있다. 건축에서 철과 유리는 현대 건물의 상징이 아니던가. 21세기에도 여전히 대도시의 마천루는 돌이나 나무가 아닌 강철과 유리, 그리고 시멘트를 재료로 짓곤 한다. 철이나 유리도 플라스틱과 견줘보면 오래됐다는 느낌이다. 플라스틱은 불과 100여 년 전에도 찾아보기 어려운 재료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플라스틱은 손으로 만지고 두들겨볼 수 있는 구체적인 재료다. 반면 반도체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트랜지스터를 가능하게 만든 반도체라는 재료는 사실 20세기 후반부터 인류의 거대한 정보산업혁명을 가능하게 만든 주인공이다. 점차 작은 트랜지스터와 칩에 정보를 담을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정보처리 및 저장능력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지금은 종이에서 필름이나 테이프 정도가 아니라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의 정보를 인간의 손바닥 안 스마트폰에서 다루는 기술도 가능하다. 앞으로 세계를 주도하는 산업은 철강보다는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는 정보통신(IT)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재료가 지배하는 세계

 

실리콘은 반도체를 통해 전자산업과 정보통신 영역에서 유용하게 쓰이지만 동시에 화학산업의 상품으로 인체에까지 침투하고 있다. 각종 성형에 동원되는 실리콘은 동양인의 코를 높여주기도 하고 빈약한 가슴을 봉긋 세워주기도 한다. 실리콘뿐 아니라 티타늄과 같은 신소재 덕분에 사람들은 치아 임플란트를 통해 노후까지 맛있는 음식을 고루 씹어 먹을 수 있게 됐다.

 

앞으로 스마트폰과 같은 기능은 점점 인간의 몸 안으로 파고들 예정이다. 이미 실리콘과 티타늄을 넘어 인공관절, 심장 박동기, 혈관 확장 등을 통해 인간과 기계의 명확했던 경계가 서서히 흐려지는 추세다. 앞으로는 인공신장처럼 밖에서 돌리던 기계를 점차 인간의 몸 안으로 투입할 가능성이 크다. 또 인간의 생명도 도구와 기계의 도움으로 점점 늘어 날 예정이다.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재료는 호모 사피엔스의 여정을 동반하면서 고유한 성격을 인류의 문화에 깊게 새겨놓았다. 인간의 지혜와 정신이 물질을 지배했다는 신화와는 달리 현실과 역사는 인간이 물질과 타협하고 협력한 결과임을 보여준다. 자본주의는 인간과 물질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면서 다양하게 발전시켰다.

 

철도를 통해 세계를 하나로 묶었고 해저 케이블을 통해 정보의 실시간 공유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교통과 통신으로 하나 된 인류는 플라스틱과 비닐의 세상으로 다시 통일됐다. 쇼핑하면 플라스틱 카드로 계산하고, 비닐봉지에 담아 집에 오고, 페트병에 콜라를 마시며, 일회용 접시와 식기를 쓰고 버리는 패턴이 세계를 지배한다. 그리고 점점 복합적으로 발전하는 새로운 소재들은 기발한 용도의 상품들을 개발하며 심지어 인간과 기계, 정신과 도구의 경계마저 흐리고 있다. 앞으로도 재료의 발전은 더 많은 상품과 가능성을 인류에 안겨줄 것이다.

 

※ 조홍식 – 1989년 프랑스 파리 정치대학(Sciences Po)을 졸업하고, 1993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유럽통합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베이징외국어대, 팡테옹-소르본대 등에서 객원 연구원 및 교수를 역임했고, 2006년부터 숭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경제와 유럽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근저로는 [문명의 그물: 유럽문화의 파노라마]와 [파리의 열두 풍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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