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터키는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형제의 나라’로 간략하게 알려져 있지만 실제 터키는 5세기 동안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를 잇는 전략적 지역을 지배했던 오토만 제국의 계승자다. 지중해 동쪽을 둘러싼 아시아의 서부, 유럽의 남부, 아프리카의 북부는 모두 15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오토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땅이다. 이 화려한 제국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건은 백 년 전의 제1차 세계대전이다. 전쟁에서 패한 오토만 제국은 무너져 분할되었고 축소된 터키만이 살아남았던 것이다.
2003년부터 총리(2003-2014)와 대통령(2014-현재)을 연달아 역임하며 터키를 통치하는 레젭 타입 에르도안은 국력을 총동원하여 과거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려고 노력중이다. 영토는 줄었지만 인구 8,300만 명의 터키는 이란, 이집트와 함께 이 지역의 대국에 속한다. 게다가 유럽연합, 러시아, 서남아시아가 만나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 잡아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며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2010년대 터키는 시리아와 리비아의 내전에 깊숙이 개입하여 분쟁의 주요 당사자로 떠올랐다. 내전 초기에 개입했다가 분쟁이 장기화되자 슬그머니 사라져버린 서방 세력의 자리를 메운 것은 푸틴의 러시아와 에르도안의 터키였던 것이다. 이제 시리아나 리비아에서 러시아와 터키를 빼고 분쟁의 해결을 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분열된 두 나라에 대해 터키와 러시아가 콘도미니엄, 즉 공동 지배체제를 굳혔다는 분석이 등장하는 이유다.
군사적 개입 뿐 아니라 소프트 파워라 불릴 수 있는 부문에서도 터키의 지역 공세는 활발하다. 터키항공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을 연결하는 촘촘한 네트워킹의 주인공이다. 이스탄불은 국제 교통의 허브로 등장했으며 터키의 관광 인프라는 유럽에 비해도 뒤지지 않는다. 터키의 TV 프로그램이나 음악 등도 지중해 지역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장기간 같은 제국의 문화를 공유했던 데다 이슬람 사회 가운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터키의 분위기도 문화의 인기에 한 몫 했다.
터키는 또 부자 이웃인 유럽연합에 대해 난민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시리아는 물론 아프가니스탄이나 예멘 등의 난민 수백만 명이 터키에 체류하면서 유럽으로 넘어갈 기회를 엿보고 있다. 터키 정부는 이들을 통제하는 대가로 유럽의 재정 지원을 받아내면서 외교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한다. 2015년 난민 사태 이후 유럽이 가장 두려워하는 현실이 난민의 대량 유입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에르도안이 통치하는 동안 국제무대에서 터키의 위상은 크게 신장되었다. 그를 현대판 술탄이라 부르는 이유다. 마치 오토만 제국이 백년 만에 부활이라도 한 듯이 말이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터키의 경제는 크게 망가졌다. 유럽연합에 가입하려던 계획은 민족주의 부활 전략으로 무산되었고, 미숙한 경제정책으로 터키의 화폐는 크게 평가절하 되었다. 무엇보다 영향력 확장의 제국주의 전략이 초래한 잦은 미국이나 유럽과의 충돌은 경제활동에는 치명적이었다.
에르도안 독재의 강화는 경제 뿐 아니라 사회의 역량도 파괴했다. 2016년 쿠데타 시도를 빌미로 에르도안 정부는 국가 조직과 시민사회를 대상으로 대대적 숙청을 단행했다. 18만 명의 공무원이 숙청당했고 수만 명의 지식인과 교사,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운동가들이 체포·수감되었다.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근대적 국가를 건설했다고 자부하던 터키의 전통은 밀려나고 다시 종교 중심의 사회로 복귀하는 중이다. 이스탄불 성소피아 박물관을 모스크로 전환하겠다는 최근의 결정은 상징적이다.
제국의 부활이라는 환상을 통해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에는 나름 순기능도 있다. 그러나 터키 국가 전략의 종점은 에르도안이라는 독재자의 영구 집권이다. 집권 20주년을 맞는 2023년 대선에서 승리하여 계속 통치한다는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독재의 가장 커다란 비극은 한 개인의 권력욕이 국익으로 포장되어 전쟁을 초래하거나 경제위기를 조장하는 등 수천만 국민의 장기 운명을 좌우한다는 사실이다.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