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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식의 세계속으로] ‘개떼 사냥’과 채식주의자 히틀러 (20.08.24.)

    • 등록일
      2020-09-17
    • 조회수
      224

프랑스, 미식 위해서 잔인한 사냥법 허용
‘유대인 대학살’ 히틀러, 동물복지엔 민감

프랑스는 인권의 나라로 유명하다. 200여년 전 1789년에 이미 대혁명을 통해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선포한 최초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물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는 한참 뒤진다. 유럽연합 차원에서 오래전부터 동물복지를 위한 정책을 시행해 왔지만 프랑스는 게으름을 피우며 요리조리 피해 가는 데 열심이다. 투표권이 없는 동물보다는 인간의 권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일까.


‘기마(騎馬)사냥’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마사냥이란 활이나 총으로 동물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개떼를 풀어 지칠 때까지 몰아붙여 생포하는 방식이다. 전통적으로 왕이나 귀족 등 개떼를 키울 능력이 있는 부류의 사냥법인데, 이들이 유유자적 말을 타고 쫓아다니기 때문에 기마사냥이라 번역한 것 같다. 말 탄 사람은 단지 구경꾼이고 실제 먹이를 몰아 잡는 것은 개의 무리이기 때문에 ‘개떼사냥’이나 ‘몰이사냥’이 더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사슴이나 토끼, 여우나 멧돼지가 도망 다니다 숨차 쓰러질 때까지 몰아붙이니 잔인한 방법임이 틀림없다.


프랑스는 아일랜드와 함께 유럽에서 드물게 개떼사냥을 아직 허용하는 나라다. 이웃 벨기에는 1995년에 금지했고, 왕과 귀족의 나라 영국도 2005년 잔인한 사냥 방식을 막았다. 독일은 아예 1930년대 나치 통치시대에 개떼사냥을 금지하고 동물을 보호하는 다양한 입법을 추진한 바 있다. 채식주의자 히틀러는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은 수용소로 보낼 정도로 동물복지에 민감했다! 나치 체제는 무너져도 동물 보호의 전통은 남았고 독일은 2002년 국가가 동물의 존엄성도 보호해야 한다고 헌법에 포함했다.


사실 프랑스에서 동물복지가 열악한 이유는 사냥의 역사와 미식의 전통 때문이다. 프랑스의 사냥꾼 집단은 시골 많은 지역에서 정치적 입김을 발휘한다. 아무리 나뭇가지에 끈끈이를 발라 새를 잡는 일을 유럽연합에서 막아도 프랑스는 아랑곳하지 않는 이유다. 기껏 잡는 새라야 티티새나 개똥지빠귀처럼 작은 새들이지만 프랑스 요리의 진미로 통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프랑스가 농업 대국으로 축산업 로비가 강하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인구는 6000만명에 불과하지만 가축의 수는 10억마리에 달한다. 대표적인 예로 프랑스에는 2000만마리의 소를 키우는 10만명의 농민이 있다. 동물복지를 위한 입법이 축산업의 강력한 로비에 번번이 가로막히는 이유다.


하지만 프랑스의 여론은 유럽 다른 국가와 비슷하게 동물의 복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축이라도 야외활동을 통해 바깥 공기를 맡을 수 있도록 해야 하며(91%) 도살하기 전에 기절을 시켜야 한다(86%)는 주장이 절대다수다. 다른 나라보다는 느리지만 프랑스도 결국 동물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들은 지난 7월부터 동물복지를 위한 국민투표를 추진 중이다.


사실 21세기의 프랑스뿐 아니라 긴 인류의 역사를 보면 인간은 자신을 위해 야생동물을 끊임없이 멸종시키면서 가축으로 지구를 뒤덮은 셈이다. 전 세계적으로 수백억 마리의 닭과 돼지와 소와 양이 인류에 양식을 제공하기 위해 희생되고 있다. 동물에게 의식(意識)이 있는지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지만 그들의 짧은 삶에서 고통을 줄여주는 노력은 필요해 보인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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