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80% 공공주택 거주하는 싱가포르
주택, 복지로 접근… 결혼하면 분양받아
“우리 아파트 분양이나 받을까.” 이렇게 청혼을 하는 나라도 있다. 그리 낭만적이진 않지만 긴 삶을 꾸려나가는 결혼에는 탄탄한 주춧돌이 필요하다. 주택이란 결혼 생활의 기본 조건이다. 누구나 원하면 새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는 나라, 그리고 할부금은 천천히 국민연금에서 갚아 주는 천국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이 나라는 국민의 90% 이상이 주택을 소유하며 80%는 정부가 만든 공공 주택에 거주한다. 주택을 소유하는 집주인 되는 일은 무척 간단하다. 직장을 가진 시민이라면 결혼하면서 주택공사에 신청을 하면 그만이다. 일하는 시민은 의무적으로 국민연금에 가입되는데 주택 할부금은 국민연금에서 주택공사로 직접 지불해주니 상환 걱정도 덜어준다.
이것은 빈곤의 극단을 달리는 공산주의 국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첨병이라 인식되는 싱가포르의 현실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6만달러가 넘고 지난 20여 년간 국가 경쟁력 세계 랭킹에서 3위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는 나라다. 자본주의 가치를 대변하는 언론 월스트리트저널의 경제자유지수도 2020년 현재 세계 1위인 싱가포르다. 모든 분야에서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보장하지만 주택만큼은 정부가 시민의 복지라 인식하고 꼼꼼하게 챙긴다.
1960년대부터 주택 소유는 시민의 기본 조건이라는 원칙을 꾸준히 추구해 온 결과다. 모든 공공 주택 단지는 촘촘한 지하철이나 버스 등의 대중교통망에 편하게 연결된 것은 물론 교육, 보건, 체육, 유통 등의 시설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 호화롭게 사치를 부린 주거 시설은 아니지만 국민 대다수가 안정적인 삶을 영유할 수 있는 어엿한 집과 환경을 누리는 셈이다.
공공 주택인 만큼 형식적으로는 99년 임대권으로 분양된다. 아무리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도 분양받은 사람의 여생을 누리기에는 충분하다. 또 입주하고 5년만 지나면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다. 동네를 바꾸고 싶거나 가족 상황에 변동이 생기면 ‘중고 주택시장’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한 사람이 공공 주택 2채를 가질 수는 없다. 다주택 소유의 문제가 원칙적으로 봉쇄되어 있다는 의미다.
이런 특별한 주택 정책은 싱가포르 역사와 지리의 산물이다. 싱가포르는 서울과 비슷한 면적의 작은 섬에 자리 잡은 도시국가이기 때문에 주택 문제를 자유로운 시장원칙에 맡겼다가는 심각한 가격 폭등의 위험이 있었다. 1965년 독립 이후 줄곧 싱가포르를 통치한 인민행동당 정부는 민간 토지를 강제 수용하여 공공 주택 건설에 나섰고 주거복지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었다. 당시 토지를 빼앗긴 계층과 그 후손들은 지속적으로 여당에 반대표를 던지는 30% 내외의 반대세력을 형성한다고 한다.
최근 한국도 부동산으로 민심이 심각하게 동요하는 실정이다. 강한 규제 정책에도 폭등하는 아파트 가격에 여론은 악화되고 여당과 정부는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정답은 없지만 싱가포르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다만 싱가포르의 주택 시장은 80%의 공공과 20%의 민간 투 트랙으로 운영되며 각각 다른 원칙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잊으면 곤란하다. 특히 민간시장의 높은 가격이나 낮은 세제 등 시장의 자유는 80% 이상의 국민이 공공주택에 안정적으로 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현실 말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