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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신문] 투키디데스의 함정과 미·중 무역 분쟁(5/14)

    • 등록일
      2019-05-17
    • 조회수
      381

[내일신문]

투키디데스의 함정과 미·중 무역 분쟁
 
지난 주 미국 워싱턴에서 진행된 미·중 무역 협상이 세계의 기대를 저버리고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종결되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00억불에 달하는 수입에 대해 기존 특별 관세를 10%에서 25%로 강화하는 한편, 3000억 달러가 넘는 수입에 대한 대규모 추가 관세도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세계를 주도하는 양국 간 협상은 열 차례가 넘게 반복되었지만 분쟁의 범위와 강도는 줄곧 확대·강화되면서 국제 경제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특히 한국처럼 무역에 의존하는 국가에게 미·중 분쟁으로 인한 세계 경제의 혼란은 치명적 위협이다.
이번 무역 분쟁에 대해 일부 지정학적 분석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역사를 동원하여 투키디데스 함정을 말한다. 새로운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 강대국이 두려움을 갖게 되고 따라서 서로 무력으로 대립하고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간단한 논리다. 이 주장에 따르면 20세기를 지배했던 미국과 21세기에 새롭게 부상하는 중국은 대립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쟁을 벌일 것이다. 전쟁의 결과 둘 다 얻는 이익보다 잃는 것이 많더라도 말이다. 실제 폴 케네디의 저서 강대국의 흥망이나 찰스 킨들버거의 경제 강대국 흥망사에는 이런 사례가 넘쳐난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에서 따온 이런 비유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곤란하다. 우리 시대에서 제일 가깝고 중요했던 권력의 이동은 19세기 팍스 브리타니카에서 20세기 팍스 아메리카나로의 이전이다. 미국은 영국이 만들어 놓은 자유주의 세계 질서 속에서 성장하여 핵심 패권국가의 위상을 대체한 것이다. 반면 충돌과 대립으로 전쟁까지 불사했던 독일과 일본은 오히려 패전하여 실패하고 말았다. 서로 불신하거나 부딪치고 마찰하는 경향이 있다고 대립과 충돌과 전쟁이 필연이라 보면 곤란하다는 말이다.
굳이 전쟁이 아니더라도 미국과 중국의 충돌 가능성은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때 제일 높았을 것이다. 미국이 글로벌 위기의 발생지로 혼란에 빠진 취약한 상황이었지만 중국은 위기 영향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상대적으로 편한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미국과 중국은 G20이라는 협력체를 출범시키며 오히려 힘을 합쳤다. 그렇다면 왜 2017년부터 양자 관계가 무역 전쟁이라 할 정도의 상황까지 악화되었는가.
미국과 중국의 국내정치를 살펴보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당선된 보호주의 성향의 트럼프는 2020년 재선을 위해 외부의 적을 만들 필요가 있고, 중국과의 충돌을 통해 국내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다고 계산한다. 전 세계 많은 포퓰리스트와 마찬가지로 트럼프도 양극화와 사회 불평등과 같은 국내 문제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면서 민족 감정을 추켜세워 자신에 대한 지지로 전환하려는 전략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시진핑도 적극적 미국 공격의 피해자만은 아니다. 대개는 점잖은 국가 지도자의 행동 패턴에서 벗어난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는 중국 여론의 민족주의적 반발을 초래하고 있다. 트럼프의 일부 참모들이 중국과의 대결을 백인 대 유색인의 충돌로 묘사하듯이 중국의 언론은 미·중 분쟁을 백 년 전 서구 제국주의의 횡포에 저항했던 5.4운동의 상황과 비유하며 국내 민족 감정을 북돋고 있다.
엄청난 정치경제적 힘을 키우며 오만해진 시진핑의 중국, 그리고 70년 넘게 세계 번영의 틀이었던 국제질서를 해체하면서까지 개인의 정치이익만 챙기려는 트럼프의 미국 사이에서 세계의 다른 나라들은 딱히 해결책을 제시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트럼프는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다자주의 제도를 망가뜨리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다. 중국 역시 힘을 가진 미국과는 대화하고 타협하려 하지만 사드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국제적 갑질로 명성을 떨치는 중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은 당분간 서로 힘겨루기에 골몰할 것으로 보인다. 위기의 상황일수록 원칙에 충실해야 하는바, 한국과 유럽과 일본 등의 행위자들은 양측의 눈치를 보면서 움츠리기보다는 국제 협력과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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