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식의 세계속으로] 증오의 함정
IS·NTJ, 테러 통해 없던 갈등 부추겨 / 증오·편견 거부로 극단세력 대응해야
21세기 아시아 최악의 테러가 지난달 스리랑카에서 발생했다. 200명이 넘는 사망자의 규모도 충격적이지만 평화롭게 부활절 미사를 드리는 성당 여러 곳이 자살 테러의 표적이었다는 점에서 세계를 경악케 했다. 희생자 가운데 어린이만 수십 명이라는 사실은 망연자실에 분노까지 불러일으켰다. 이 야만적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나는 종교 갈등이 테러를 낳았다고 보는 시각이다. 이슬람 단체가 부활절에 가톨릭 성당을 공격했다는 점에서 이런 해석은 얼핏 타당해 보인다. 마치 필연적 문명충돌론을 증명이라도 하듯 얼마 전 뉴질랜드에서 이슬람을 공격하는 테러가 일어났고, 이번에는 스리랑카에서 기독교를 강타하는 테러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시각은 유럽의 식민주의와 그로 인한 민족갈등이 테러를 일으켰다고 설명한다. 유럽은 16세기부터 세계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식민지배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기독교를 전파했다. 영국제국은 식민지 스리랑카에서 소수 타밀족을 활용해 다수 싱할라족을 지배했고, 이는 독립 이후 민족분쟁의 씨앗이 됐다는 지적이다.
종교나 민족 분쟁을 통한 설명은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스리랑카 부활절 테러를 설명하기는커녕 오히려 테러집단이 즐겨 사용하는 문명충돌론이나 반제국주의 이념을 그대로 받아들여 이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는 셈이다. 실제 인구 2100만명의 스리랑카는 75%의 싱할라족과 25%의 타밀족이 공존한다. 종교 분포는 불교 70%, 힌두교 13%, 이슬람 10%, 기독교 7% 정도다. 싱할라족은 거의 모두 불교이고, 힌두교나 이슬람 신도는 거의 모두 타밀족이다. 기독교는 싱할라와 타밀족을 모두 포괄해 민족 색채가 없다.
싱할라와 타밀이 스리랑카에서 공존한 역사는 2000년이 넘는다. 상호 민족갈등은 영국 식민시기 강화됐고, 또 스리랑카가 1980년대부터 2009년까지 내전을 치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서로 대립한 것은 다수 싱할라·불교 세력의 정부군과 소수 타밀·힌두교 반군이었다. 내전 시기 타밀·이슬람세력은 어느 편도 들지 않았다. 기독교 공동체는 소속 민족에 따라 싱할라족은 정부군을 지지하고 타밀족은 반군을 지지했었다.
이처럼 스리랑카의 전형적 갈등은 불교와 힌두교였지 이번 테러에서 드러나듯 이슬람과 기독교가 아니었다. 또 스리랑카의 전통적 대립은 싱할라와 타밀이었는데 이번 테러에서는 이런 민족적 성향을 발견할 수 없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싱할라와 타밀이 함께하는 종교 공동체로서 민족 갈등의 전통적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 역사에서 이슬람과 기독교 공동체는 둘 다 소수집단이라는 공통점을 가지며 거주하는 지역도 서로 달라 특별히 충돌할 이유가 없다.
이번 테러의 핵심은 외부 이라크·시리아에서 패주한 이슬람국가(IS)와 스리랑카 내부의 극단이슬람세력(NTJ)의 기회주의적 만남에 있다. 피에 굶주린 두 세력은 테러 만행을 통해 스리랑카와 남아시아에 증오와 대립의 미래를 만들려고 한 것이다. 달리 말해 종교나 민족의 구조적 갈등이 테러를 낳은 것이 아니라 테러를 통해 없던 충돌을 조장하고 새로운 갈등을 만들려는 전략이라는 뜻이다. 이 같은 극단세력에 대한 최선의 대응은 종교나 민족에 관한 집단적 증오와 편견을 홀연히 거부하는 일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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