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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AI논평] 브렉시트의 드라마와 유럽의 ‘공동체 정신'(4/16)

    • 등록일
      2019-04-18
    • 조회수
      365

[EAI 논평] 브렉시트의 드라마와 유럽의 ‘공동체 정신’

2019-04-16 |조홍식

ISBN  979-11-88772-66-7 95340

[편집자주]

유럽연합과 영국은 브렉시트 기한을 당초 3월 29일에서 4월 12일로 한 차례 연기한 데 이어, 이를 10월 31일까지 재연장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이로써 ‘노딜 브렉시트’라는 최악의 사태는 면하게 되었으나, 향후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브렉시트가 2016년 영국의 국민투표로 결정된 사안임에도 유럽연합이 아닌 자국 내 분열로 의회의 비준을 받지 못해 현재까지 표류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27개국으로 구성된 유럽연합은 일관된 협상 전략으로 공동 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영국의 무책임한 태도에 ‘기한 연장’이라는 관용까지 베풀고 있습니다. 양측이 이러한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데에는 유럽통합에 대한 영국의 소극적 태도와 선별적 참여, 70년에 걸쳐 형성된 유럽연합의 ‘공동체 정신’이라는 역사적 배경에 기인하고 있다고 조홍식 숭실대 교수는 분석합니다.

 

‘할로윈 브렉시트’

지난 4월 10일 저녁에 시작하여 이튿날 새벽까지 지속된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 영국을 제외한 EU 27개국은 브렉시트(Brexit)의 기한을 10월 31일까지 연장하는 결정을 내렸다. ‘할로윈 브렉시트’라 불리는 이 방안은 영국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만일 유럽 정상들이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면 영국은 4월 12일 자동으로 유럽에서 탈퇴를 당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노딜(no-deal) 브렉시트’의 시나리오로 탈퇴 조건에 대한 합의나 과도기 없이 하루아침에 회원국에서 비회원국으로 전락하는 사태를 말한다.

브렉시트의 드라마를 이해하려면 그 과정을 대략 파악해야 한다. 우선 브렉시트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의미하는 신조어로 지난 2016년 6월 23일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한 사안이다. 당시 52%의 국민이 탈퇴를 선택했고 나머지 48%가 유럽연합의 잔류를 지지했다. 국민의 결정을 실행하기 위해 영국 정부는 유럽연합 탈퇴와 관련한 협상을 2017년에 시작하였다. 유럽연합의 리스본 조약 50조가 발동되면서, 이때부터 2년의 협상, 합의, 비준의 기한이 주어진다.

국민투표로 결정된 것은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사실일 뿐, 어떤 방식으로 탈퇴하고 어떤 미래 관계를 맺을지는 영국 정부와 유럽연합의 협상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는 내용이었다. 영국이 유럽연합에 가입한 것이 1973년이니, 반세기에 가까운 공동의 삶을 청산하는 과정은 복잡하고 지난했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2018년 11월 드디어 유럽연합과 영국 양측이 탈퇴의 조건과 과정에 대해 합의에 도달했다. 주요 국제조약과 마찬가지로 이 정부 간 합의는 양측 의회를 통해 비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양면이론에 비추어 보면 본격적인 국제 협상이 종결되고 국내 협상의 단계로 넘어간 셈이다. 유럽연합 측의 비준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었지만, 영국은 국내의 의회 비준이 국제 협상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원래 영국의 비준 시한은 올해 3월 29일로 이때까지 비준에 실패하면 노딜 브렉시트가 가동되는 상황이었다. 실제 영국은 합의안 비준을 1월 15일과 3월 12일 두 차례 시도하였지만 여당 보수당의 분열과 야당의 반대로 모두 실패하였다. 따라서 테리사 메이(Theresa May) 총리는 유럽연합에 시한을 연장해 달라는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연합은 4월 12일로 이미 한 차례 연장을 해 주었지만, 이번에도 영국은 의회 내 비준을 위한 다수를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다시 연장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영국 의회가 이 과정에서 보여준 분열된 모습은 세계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영국 의회는 브렉시트와 관련된 8개의 안을 놓고 의원의 성향을 조사하는 투표까지 실시했는데 그 어떠한 안도 다수를 확보하지 못했다. 간단히 말해 유럽에서 탈퇴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의회는 그 어떤 합의도 도출할 능력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나마 영국 의회에서 유일하게 다수를 확보한 안은 특정 브렉시트의 방안이 아니라 노딜 브렉시트만은 피하자는 안건이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자살만은 하지 말자는 셈이다.

한 나라 한 의회에서 자국 정부가 합의한 안건을 비준조차 하지 못하는 무책임한 광경을 보여주는 동안 27개국이 모인 유럽연합은 일관된 협상 전략을 추진했고, 분열을 피해 공동의 전선을 유지했으며, 상대방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서도 관용을 보이며 시한을 계속 연장해 주는 대조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이번 정상회의에서 27개국 가운데 단 한 국가라도 영국에게 더 이상 시간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비토권을 행사했다면 영국은 4월 12일 노딜 브렉시트를 맞아야 했다. 재미있는 상상이지만 몰타나 사이프러스 같은 소국이 몽니를 부렸다면 영국은 자동 탈퇴라는 봉변을 당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아이러니를 이해하려면 역사에서 그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영국, 역사적 배경과 전술적 실수

영국이 유럽통합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역사적 배경은 브렉시트의 기본 조건이다. 독자적 노선을 걷는 영국의 전통은 오랜 뿌리를 갖고 있다. 영국이 세계적인 세력으로 부상한 18세기 이후 영국은 유럽대륙과 대등한 위상을 가졌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20세기 유럽대륙이 통합의 길을 함께 갈 때도 이들과 동행하기보다는 방관자적 입장이었다. 영국이 1950-60년대 유럽통합에 동참하지 않다가 1970년대에 와서야 뒤늦게 동참한 이유도 이러한 근본적인 ‘거리두기’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은 1973년부터 반세기 가까이 유럽에 회원국으로 참여했지만 내부에서의 역사도 다사다난했다. 이미 1975년 잔류와 탈퇴를 놓고 국민투표를 치른 바 있고, 1980년대에는 대처 총리가 “내(영국) 돈을 돌려 달라”고 유럽을 향해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유럽이 1999년 유로로 화폐통합을 단행할 때도 영국은 빠졌고, 시민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솅겐(Schengen) 협정에서도 영국은 예외였다. 유럽통합의 선두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프랑스나 독일, 이탈리아 등의 대국과 달리 영국은 항상 경계에서 치밀한 계산을 통해 선별적 통합을 선택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영국 정치에 큰 부담이 되었다. 국익을 생각한다면 유럽통합에 동참하는 것이 이로운 데, 유럽/반(反)유럽 세력의 대립이 보수당과 노동당 양당 내 모두 상존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과거 그 유명한 대처나 뒤를 이은 메이저 총리가 실각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당내 친(親)유럽 세력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블레어와 브라운 총리의 제3의 길 정부는 유럽에 우호적인 입장이었지만 노동당 내에도 코빈과 같은 반유럽 세력이 굳건했다.

이처럼 당내 역사적 분열이 발목을 잡은 데다 캐머런과 메이 총리의 전술적 실수는 상황을 악화시켰다. 2015년 총선에서 캐머런 총리가 유럽연합의 잔류/탈퇴를 결정하는 국민투표를 공약으로 내건 이유는 연정 파트너의 가능성이 높았던 자유민주당이나 노동당이 반대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거에서 보수당이 대승을 거두었고, 따라서 국민투표의 공약을 실행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위험한 공약을 조심스럽게 거두는 지혜를 택할 수도 있었지만 캐머런은 위험한 도박을 선택했다. 이때 여·야의 캐머런과 코빈이 잔류 진영을 형성했고, 보수당의 런던시장 존슨과 영국독립당(UKIP) 파라지가 탈퇴 캠페인을 벌이는 진풍경이 전개되었다. 예상과 달리 국민들이 탈퇴의 결정을 내리자 캐머런은 무책임하게 총리직을 내던졌고, 존슨도 이어 총리직을 맡기를 거부했다.

총리로 부임한 메이 역시 실수 연발이었다. 2017년 멀쩡한 보수당 다수 의회를 해산하고 다시 총선을 치렀는데 결과는 참담했다.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과의 연정으로 간신히 정권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의회 절대 다수당의 지위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브렉시트를 순조롭게 진행하려면 야당인 노동당을 고려한 전술을 펴야 했는데, 그보다는 보수당 내 강경파를 규합하기 위한 ‘하드 브렉시트’ 전술로 일관했다. 유럽연합은 탈퇴하더라도 단일 시장이나 관세동맹은 유지하려는 ‘소프트 브렉시트’와 달리, ‘하드 브렉시트’는 영국을 대륙으로부터 완전히 결별하게 만드는 선택이었다.

2019년 4월 현재 메이 정부는 비참한 지경에 처했다. 자국 내 여론은 심각한 분열과 대립의 증상을 보이고 있으며, 의회에서 미래를 위한 안을 도출해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메이의 보수당은 다양한 세력으로 분열되어 있으며, 정부의 장관조차 총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비극적 경험을 반복하고 있다. 메이는 브뤼셀에 가서 시간을 더 달라고 구걸해야 했고, 27개국 정상이 만찬을 하며 회의하는 동안 ‘혼밥’으로 불안감을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유럽연합의 ‘공동체 정신’

며칠 전부터 이번 정상회의를 앞두고 다수의 언론과 전문가들은 유럽연합이 노딜을 피하고 영국에게 더 많은 시간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27개국 가운데 한 나라라도 노딜을 주장하면 불가능한 결과였지만 유럽의 운영 방식을 아는 사람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유럽연합은 70년 가까운 협력의 역사를 통해 ‘공동체 정신’(Community spirit)이라는 가치를 공유해 왔기 때문이다. 공동체 정신은 브렉시트 과정의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동체 정신이란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을 의미한다.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일방적으로 연합에서 나가겠다고 통보하면 감정이 상한 유럽은 보복적 태도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브렉시트에 대해 깊은 아쉬움을 표현했지만 영국의 선택을 존중했고, 싫어서 나가는 파트너라 할지라도 단일시장이나 관세동맹과 같은 제도에는 잔류하기를 바랐다. 심지어 이제 다시 영국이 탈퇴 신청을 철회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관용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유럽연합의 중심인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영국이 유럽을 버릴 수는 있지만 유럽이 영국을 노딜로 몰아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끝까지 파국을 막겠다고 나섰다. 이에 유럽연합 투스크 상임의장은 영국이 국내정치적 분열의 문제를 해결하고 제대로 비준할 때까지 1년의 시간을 더 주자는 안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에 반대 의견을 내며 최소한의 시간만을 주어야 영국 의회가 긴장하여 비준에 동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크롱은 노딜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그래야 브렉시트 문제를 유럽연합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렇게 의견이 대립할 경우 유럽의 공동체 정신은 타협으로 귀결된다. 그 결과, 노딜도 아니고 1년도 아닌, 딱 절반 6개월이라는 시간을 더 주게 되었다.

이처럼 공동체 정신이란 상대방을 존중하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또한 서로 의견이 다를 수는 있지만, 조금씩 양보를 통해 타협안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한다. 유럽통합의 역사를 보면 이러한 습관과 전통, 정신은 급속하게 조성된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에 의해 서서히 만들어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제 브렉시트는 어디로 갈 것인가? 유럽연합은 영국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었다. 하지만 메이 정부와 합의한 내용이 영국 의회에서 비준될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메이 정부는 노동당과 비준의 순간이 되어서야 협의를 시작했지만, 입장 차이로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태며, 양당 간 새로운 타협이 이뤄질지도 불확실하다. 메이 총리가 사퇴하더라도 새 총리는 하드 브렉시트에 가까운 입장의 인물이 될 가능성이 높아 유럽연합과 합의를 도출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유럽과 영국이 실천할 수 있는 길은 “깡통을 길 아래로 차버리기”(kick the can down the road), 즉 “먼지를 카펫 아래로 밀어 넣기”(pousser la poussière sous le tapis) 밖에 없어 보인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결정을 뒤로 미루는 행동 말이다. 영국에서 새로운 총선이나 국민투표가 치러진다 하더라도 그 결과나 브렉시트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국민투표 후 3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브렉시트의 향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

 

 

■ 저자: 조홍식_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프랑스 파리정치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정치경제, 유럽지역연구, 정체성의 정치 등이다. 대표 저서로는 《문명의 그물: 유럽문화의 파노라마》, 《하나의 유럽: 유럽연합의 역사와 정책》, 《유럽통합과 ‘민족’의 미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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